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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제   목
    제15회 포은문화제 포은골든벨 예상문제(O,X형)
  • 작성자
    용인문화원
  • 작성일
    2017.05.10
  • 파  일

본문 내용

 

 

포은골든벨 문제

 

1.용인에는 용인 향교와 양지 향교, 두 개의 향교가 남아 있습니다.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의 기능을 담당했던 이 향교는 주로 그 지역의 유림들이나 문중에서 설립하였습니다.

정답 (X)- 나라에서 세운 관학이다.

 

  1. 원삼면 사암리에는 세 개의 큰 돌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암리 돌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이곳에서 마을의 제사를 지내거나 정월 보름날에 치성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고인돌’이라 부르며 마을을 표시하는 표시석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정답 (X)-고인돌이 아닌 선돌이라 부른다.

 

  1. 법륜사 삼층석탑은 원삼면 농촌테마파크 옆에 위치한 사찰인 법륜사 관음전 앞마당에 있다.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석탑이 조성된 이후 이 자리에 계속 있어왔습니다.

정답 (X) 이 탑은 절이 창건될 때(1996~2005) 서울에 사는 신자에게 보시 받은 것으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자세한 유래나 원래 탑이 있었던 사찰이 어느 곳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1. 왕의 능이나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의 묘에는 여러 석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손에 패와 같은 홀을 들고 있는 석물은 문인석, 갑옷을 입고 검을 쥐고 있는 석물은 무인석이라고 부릅니다. 촛불모양으로 생긴 석물은 망주석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양석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O)

 

  1. 용인에는 많은 박물관 미술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처인구 백암면에 있는 예아리박물관에서는 전통적인 관,혼,상,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각종 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정답 (X) - 전통 상례 문화와 세계 각국의 상례문화와 관련된 유물을 만나볼 수 있으며 유서쓰기, 입관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1. 처인구 백암면에 있는 대장금파크는 SBS를 대표하는 역사드라마를 촬영하는 곳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별 건축양식을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하였으며 건축물의 크기는 카메라 앵글 때문에 실제크기 80% 정도의 수준으로 제작하여 영상에 가장 알맞게 표현되도록 하였습니다.

정답 (X) - MBC를 대표하는 사극 드라마를 찍는다.

 

  1. 전국 최대의 우시장이 들어서 소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백암장은 멀리 경상도 상주에서도 소를 사러 왔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시장이었습니다. 이 시장에서는 가격이 싸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으로, 용인의 여러 자랑거리 중 하나인 백암순대는 돼지 내장에 온갖 야채와 고기를 넣어 만든 전통 순대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합니다. 정답 (O)

 

  1.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마을마다 수호의 역할로 여러 신앙물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청동기 시대에 마을 앞에 서서 마을을 보호해 주고 병마를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닌 커다란 바위를 하늘을 향해 높이 세운 것인데 용인에는 창리, 두창리, 사암리 등에 이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솟대라고 부릅니다.

정답 X 선돌

 

  1. 원삼면 미평리에는 4.3m의 불상이 마을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 불상은 한손에 약병을 들고 머리에 보개를 두르고 서 있는 부처님으로 어떠한 병도 모두 고칠 수 있는 정병을 손에 들고 있기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약사여래불이라 불렀습니다.

정답 (X) - 미륵불. 미륵이 사는 마을

 

  1. 나라에서 세운 관학인 향교는 용인에도 두 곳이 있습니다. 군. 현에 하나씩 설치한 향교에는 10명에서 30명 정도가 모여서 과거를 보기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향교에는 반드시 16세 이상의 양반의 자녀의 자격을 가져야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정답 (X) -16이상의 남자로 양반이나 향리 자제를 원칙으로 하였다.

 

  1. 1930-4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는 카프계열의 작가 안막과 결혼하여 원삼면 문촌리에서 6년 동안 살면서 첫 딸 안승자를 이곳에서 낳았습니다. 최승희는 승무, 칼춤, 부채춤, 가면춤 등 고전무용을 현대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서울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춤을 체계화하고 많은 청소년들에게 무용을 지도하며 자신의 춤을 전수하였습니다.

정답 (X)-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북한에서 청소년들에게 무용을 지도하였다.

 

  1. 우리 고장 용인에도 천주교 성지가 있습니다. 그 중 은이성지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천주교 사제가 되었던 김대건 신부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 분이 살던 집터가 양지 컨트리클럽 골프장 한쪽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석상과 제대, 초가집과 어머니 고씨의 모습을 새긴 부조가 남아 있습니다.

정답 (O)

  1. 원삼면 문촌리에는 조선 정조 대의 무신이었던 오백 이주국 장군의 고택이 있습니다. 이 고택은 수리할 때 1753년 영조 임금 29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는 상량문이 나와서 역사가 오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에는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정답 (X)- 100년 전까지는 후손이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정병하씨의 소유)

 

  1. 용인의 역사를 보존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용인문화원은 포은문화제, 처인성 문화제 등을 주관하고 있으며, 용인 관내의 문화 유적을 용인시민에게 알리는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강습을 통해 배운 것을 공연 전시하고, 용인의 문화에 관한 여러 책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정답 o

 

  1. 적서차별의 문제를 드러낸 사회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묘소가 용인 원삼면 맹리 양천허씨 세장지에 있습니다. 이 곳에는 허균을 비롯한 아버지 허엽, 두 형 허성, 허봉의 묘가 있습니다.

정답 (O)

 

16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끊임없이 왜구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특히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침략이 더 심했습니다. 1418년 서해안에 왜구가 창궐해지자 그 다음해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대마도로 건너가 왜구를 정벌한 조선시대의 무신은 최윤덕입니다.

정답 (x)- 이종무 ·

 

  1. 정암 조광조 선생님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성리학자였습니다. 향약의 설치.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위훈삭제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다가 사림파의 모함을 받아 전라도 능주(화순)로 유배되고 한 달 만에 사사 되셨습니다.

정답 (x) 훈구파

 

  1. 용인에는 서원이 충렬서원과 심곡서원 두 개가 있습니다, 이 중 정암 조광조 선생의 신위는 처음에는 포은 선생님과 함께 죽전동 죽전서원에 배향되어 있었으나, 이 서원이 병자호란으로 불에 탔으며 후에 정몽주 선생님은 충렬서원에 ,조광조 선생님은 심곡서원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정답 (x) 임진왜란

 

  1. 양지 향교의 대성전의 문은, 문을 열고 들어 올려서 걸쇠에 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문을 만드는 여러 방식중 하나인데, 이러한 방식의 문을 분합문이라고 부릅니다.

정답 o

 

  1. 고려 말기의 문신(1337~1392)입니다. 자는 달가이고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입니다. 1392년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고 끝까지 고려 왕조에 충성을 바치다가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의창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뛰어났습니다. 저서에 《포은집》이 있고, 시조로 <하여가>가 유명합니다.

정답 X 단심가

  1. 용인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항거하는 독립운동가가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중 대한제국의 육군 정위였던 김혁 장군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기흥에서 3.1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만주로 건너가 그 곳에서도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정답 (X) - 우리나라에 와서 돌아가셨다.

 

  1. 광교산 동쪽에 서봉사지라는 절터가 있습니다.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이 곳 주지스님이 국왕을 강학했다는 일설도 전해집니다. 스님이 돌아가시자 고려 명종 임금께서 ‘현오’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비를 세우게 했다는 ‘현오국사탑비’가 보물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답 (X) 보물9호

 

  1. 기흥구 구성동에 있는 용인향교는 기흥향교라고도 지칭되지만 용인향교가 올바른 명칭입니다. 건립 연대는 대략 조선 정종2년(1400)경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의 기능은 사라지고 향사의 기능만 남았지만 지금은 한문교육, 서예 강습 등 교양 과목을 개설하여 지역사회의 교육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정답 (x) 구성향교

 

  1. 용인의 인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학자 정암 조광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광조 문화제’가 2011년부터 수지구 심곡서원 일대에서 개최 되었습니다. ‘큰선비 조광조’라는 특별공연과 함께 정암선생을 기리는 서예전도 함께 열려 뜻 깊은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답 (x) 정암문화제

 

  1. 수지구 죽전동 일대에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놀이 줄보맥이가 2009년 경기 민속예술제에 용인시 대표로 출전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죽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김응호씨가 중심이 되어 오랫동안 잊혀진 우리 문화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 대단합니다. 죽전 줄보맥이는 화합과 풍요를 기원하는 공동체 문화행사로 백중날에 해오고 있는 민속놀이입니다.

정답 (x) 정월 대보름

 

  1. 경안천은 예전에는 김량천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이 다시 원래의 이름인 김량전을 찾자고 노력하기도 하는 이 하천은 해곡동 산지의 문수샘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류를 만나 김량장동을 중심으로 분지를 형성하고 포곡 모현을 지나 광주를 통과해 한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입니다.

정답 (o)

 

  1. 1905년 을사년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이 갖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에 항거하여 여러분들이 자결을 하셨는데, 이렇게 맨손으로 일제에 항거한 분들을 열사라고 합니다. 이 중 을사늑약 전에 순국한 열사는 계정 민영환입니다.

정답 (x) - 국은 이한응

 

  1. 모현면 오산리에 해주 오씨의 세장지가 있습니다. 이 곳에는 일제 강점기에 오인수 의병장을 중심으로 아들 오광선 장군과 딸 오희영, 오희옥 등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을 기리는 <의병장 해주 오공 인수 3대 독립항쟁 기적비> 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답(X) - 원삼면 죽능리

 

  1. 오달제는 대한 제국 육군 무관학교 출신으로 3·1운동에 참여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김좌진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군 양성에 노력하였습니다.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되었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정답 (x) - 김혁

 

  1. 석농 유근선생은 1861년 용인에서 태어났습니다. 1895년 4월 탁지부 주사로 김홍집 내각에 참여했다가 관직을 내놓은 뒤 1896년 독립협회에 가담 독립운동과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898년 남궁억 등과 함께<황성신문>을 창간하였고 창간 당시 주필과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자 장지연 선생이 ‘시일야방성대곡’을 쓸 때 격분한 나머지 끝을 맺지 못하자 선생이 후반부를 마무리 지어 일제의 부당성을 폭로하였습니다.

정답 (o)

 

  1.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지저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고개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이 시조는 시조창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가사이고,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시조입니다. 시조를 쓴 사람은 약천 남구만으로 조선 시대 정치가입니다. 그가 정치를 그만두고 용인 지역의 농촌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쓴 작품입니다. 이 시조를 쓴 약천 남구만 선생은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화가였다고 합니다.

정답 (x) - 일호 남계우

 

  1. 용인에는 서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 중 정조 때 지방유림의 공의로 도암 이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동면 천리에 한천서원이 건립되어 사액되었습니다. 이 한천 서원은 1868년 (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고종에 의해 다시 복권되었습니다.

정답 (x) - 복권되지 못했다

 

 

  1. 양지향교의 대성전의 기둥은 다른 지방 향교의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기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지방의 향교 대성전에서는 원기둥을 사용하고, 민가에서는 주로 사용하는 네모기둥을, 궁궐에서는 원기둥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양지향교의 특색인 이곳의 기둥은 육각모양의 기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답 X 팔각기둥

 

 

  1. 용인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가 70여 군데가 있다고 밝혀질 만큼 도자기 요업지가 많습니다. 그 중 서리 중덕 고려 백자 요지는 1984년 제1차로 호암미술관에 의하여 발굴 조사되어 10세기를 전후한 가마터로 밝혀졌으며, 고려시대에는 청자를, 조선시대에는 백자를 굽던 가마터입니다

정답 (x) -고려시대에 백자를 굽던 가마터

 

  1. 몽골은 고려 때 40여년에 걸쳐 여러차례 침략을 하였습니다. 1231년 1차 침략을 시작으로 하여 그 이듬해인 1232년(고종 19년) 9월 제2차 침공을 감행하였습니다. 몽골장수 살리타이는 중원경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이르러 김윤후와 부곡민들에게 의해 화살을 맞고 사살당함으로써 몽골의 제2차 고려침공을 물리치는 대승을 세운 이곳은 할미산성입니다

정답 (x) - 처인성

 

  1.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이동면 묵리에 있습니다. 대웅전 뒤편에 용이 살았다는 굴이 있어 굴암절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신라 문성왕 때 염거선사가 창건하였고,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3층 석탑 1기와 보살상, 철인 3위를 조성하면서 중창한 이절은 용덕사입니다.

정답 (o)

 

  1. 용인에는 대한불교열반종의 총본산으로 1970년 실향민인 김해근 법사가 부처의 공덕으로 민족화합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로 8m에 이르는 불두와 누워계신 부처님으로 유명한 법륜사가 처인구 해곡동에 있습니다.

정답 (x) - 와우정사

 

  1.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문화복지행정타운 내에 있는 복합문화시설로 용인시립예술단, 용인문화원 등의 단체가 들어서 있다. 3층에 위치한 마루홀은 30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2005년에 문을 열어 아동극, 가족극 위주의 다양한 공연물을 선보이고 있는 이곳은 용인문예회관입니다.

정답 (x) - 용인시 문화예술원

 

  1. 고려시대에 몽골과의 전쟁에서 유일한 승리로 기록되어 있는 처인성 전투를 기념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자랑스런 처인성대첩을 널리 알리고 용인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취지에서 용인 문화원에서 개최하고 있는 지역문화축제는 처인성문화제입니다

정답 (o)

 

  1. 동홰놀이는 팔월 대보름인 한가위를 맞이하여 마을 단위로 행해지는 풍농과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이동면, 양지면 등 용인시 동부지역에서 전승되어오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지금은 신봉동 등지에서도 행해지는 대표적인 세시풍습의 하나로 자리잡은 놀이입니다.

정답 (x) -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놀이

 

  1. 인구가 적고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물건을 사고자 하는 수요가 적었기 때문에 행상이나, 5일장 등의 형태로 상인들이 이동하였습니다. 점차 교통이 발달하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상설 시장이 형성됩니다. 용인에는 여러곳에서 5일장이 열리는데, 조선후기에 교통이 발달한 김량에 장이 열리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에는 이동면 송전에도 장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 때 김량에 열리던 장을 용인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답 (x) 김량장

 

  1.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3학사 중 한 사람입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끝까지 척화를 주장했습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한 뒤, 청에서 척화론자의 처단을 요구하자 스스로 척화론자로 나서서 윤집·홍익한 등과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고문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항변하다 심양성 서문 밖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 사람은 유형원입니다,

정답 X 오달제

 

 

  1.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우봉 자는 희경 호는 도암, 또는 한천으로 숙종 28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습니다. 특히 예학에 밝아서 많은 저술을 편찬하였는데, 저서로는 도암집을 비롯하여 사례편람, 어류초정 등의 책을 편찬한 사람은 이 사람은 도암 이재 선생입니다.

정답 (o)

 

  1. 고려 시대 후기의 대 문장가인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명종이 신하들에게 <소상팔경>시를 짓도록 하였을 때 어린 나이로 장편을 지어 이인로와 더불어 절창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주필(글씨를 흘려서 빨리 씀)로 이름난 이 사람은 김부식입니다.

정답 (x) 진화

 

  1. 조선 효종 때의 실학자(1622~1673)로 학행(學行)으로 두 번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중농 사상에 입각하여 전반적인 제도 개편을 구상한 《반계수록(磻溪隨錄)》이 있습니다. 묘소가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이 사람은 연암 박지원입니다

정답 X 반계 유형원

 

  1. 172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4세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영조의 탕평책을 도와 정치를 안정시키고 암행어사가 되어 균역법에 따른 백성의 민심을 살피는가 하면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시키는 것을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다. 정조가 즉위한 후에는 노비제도의 폐단을 바로잡았고, 신해통공을 단행하였다. 영의정에 임명되어 국정을 운영하였으며 수원화성을 축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 사람은 채제공입니다,

정답 o

 

  1.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고인돌의 종류는 탁자식과 바둑판식이 있습니다. 모현면 왕산리 고인돌유적은 탁자식으로 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탁자식 고인돌을 축조할 때 제일 마지막에 무덤방을 튼튼하게 막는 돌로, 굄돌로 ‘마무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이 돌의 이름은 마구리돌이라고 부릅니다.

정답 : ○

 

  1. 외국어대학교 왕산캠퍼스 뒷산에 사주당 이씨의 묘가 있습니다. 18세기의 신여성이라 부를 만큼 유학을 공부하고 글 읽기와 쓰기를 좋아하여 문장에 뛰어난 그녀는 결혼 후 집필에 몰두하여 아이와 어머니들을 위한 유아도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정답 : × 태교신기를 만들었다

 

  1. 조선시대 여성들은 이름을 부르기보다 성씨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성들의 호는 대체적으로 그들이 거처하던 집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성씨 뒤에 호를 붙여서 신사임당, 강정일당, 이사주당 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호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만 붙여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정답: × 윗어른이 붙여준다

 

  1. 모현면 갈담리에는 약천 남구만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약천 선생은 조선 숙종 때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는 내용의 ‘농부가’라는 시조를 지어서 임금과 백성을 아우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농촌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시조가 현대에는 ‘동창이 밝았느냐’ 라는 시조창으로도 불리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정답: × 권농가

 

  1. 약천 남구만선생은 조선 숙종 때 71세의 나이에 용인으로 낙향하여 남은 생을 사셨습니다. 이곳 모현면 갈담리 파담 마을은 약천선생의 많은 일화가 남아 있는 곳이며 근처에 선생의 별묘가 있기도 합니다. 이 별모 앞에 있는 경안천 건너 산자락을 약천선생의 이름을 딴 구만이산이라고 부릅니다.

정답: ○

 

  1. 모현면 오산리는 해주오씨의 집성촌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삼학사의 한분으로 청나라 심양에서 목숨을 잃으신 추담 오달제 선생의 묘와 그의 부친, 증조, 고조까지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추담 오달제 선생의 묘는 시신이 없는 가묘이며 평소에 지녔던 주머니와 요대가 묻혀있다 해서 묘 앞에는 대낭장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답 : ○

 

  1. 이 사람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 별제가 되었고 1624년(인조2) 직장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공주까지 호종하였습니다. 이어 종묘서직장을 거쳐 성균관 전적이 되었습니다. 충렬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이 사람은 정보 선생님입니다.

정답 X 죽창 이시직

 

 

  1. 충렬서원은 포은선생의 뜻을 기리며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기위한 유생들이 학문을 닦았던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사액을 받았으나 지역 유림들에 의해 운영된 서원이었기에 사학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맞서 나라에서 세운 관학이 있었는데 군, 현마다 하나씩 세웠습니다. 이것을 향교라고 합니다.

정답: ○

 

  1. 본관은 진주로 호는 서파·방편자(方便子)·남악(南嶽)로 불립니다.

아버지는 목천현감 한규이며, 어머니는 이창식의 딸로 〈태교신기〉를 저술한 전주이씨 사주당입니다. 본디 몸이 허약했는데 천연두를 앓고 난 뒤에는 더욱 건강이 나빠졌고, 11세에 아버지를 여읜 후에는 어머니로부터 천문에서 조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학문을 익혔다고 합니다. 18세에 향시에 합격했으나,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1821년 어머니가 죽은 후 과거에 응시하여 182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829년 황감제에 직부회시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았던 이 사람은 유희입니다.

정답 O

 

  1. 한국등잔박물관은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등잔을 테마로 한 곳입니다. 1층에는 민속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각종 시대별 등잔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옛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야외 연못과 정자, 농경전시관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박물관 외관의 모습은 수원화성의 공심돈 모양의 본을 따서 만들었기에 눈에 익숙한 모습입니다.

정답 : ○

 

  1. 허난설헌은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입니다. 허씨 5문장으로 유명한 집안에서 유일한 여류시인으로 가족묘가 모두 용인에 있는 연고로 허난설헌의 묘도 원삼면 맹리에 있습니다.

정답 X 허난설헌의 묘는 광주 초월읍에 있다.

 

  1. 포은선생의 묘가 모현면 능원리에 쓰이게 된 것은 선생이 돌아가신지 십 수 년 지난 후 선생의 묘를 이장하기 위한 천장행렬이 개성에서부터 내려오다가 지금의 수지구 풍덕천동 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도중 회오리바람이 불어 상여의 아름다운 꽃송이가 날아가 지금의 이곳에 떨어지자 묘를 쓰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정답 : × 명정

 

  1. 포은선생 묘소 바로 옆에는 저헌 이석형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이 분은 포은선생의 증사위 되시고 세조가 총애하던 신하로서,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예종 때에는 훈작을 받으시고 연성부원군까지 올랐습니다. 그래서 저헌 이석형 선생 묘역 석물 중에는 왕이 하사한 무인석 2기가 쌍으로 나란히 배치되었습니다.

정답 : × 무인석 없다. 문인석만 있다.

 

  1. 에버랜드 뒷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호암미술관은 1982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입니다. 약 20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국보와 보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술관 앞으로 펼쳐지는 연못과 정원은 우리나라 전통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름다움이 있고 사계절 심신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정원의 이름을 ‘희원’이라고 합니다.

정답 : ○

 

  1. 이 날은 씨를 뿌리고 한 해 농사가 잘 되게 기원하는 날입니다. 수리취떡을 먹으며 창포물에 머리감기, 그네뛰기, 씨름 등의 민속놀이를 하는 음력 5월 5일을 단오라고 부릅니다.

정답 O

 

  1. 호암미술관 입구에는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줄을 지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수건너 향수산에도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용인8경중의 하나로 매년 4월이 되면 벚꽃을 주제로 하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것을 ‘벚꽃문화제’라고 합니다.

정답 : ○

 

  1. 모현 지역에는 용인의 어느 지역보다 많은 역사인물들의 묘역이 많이 있습니다. 포은선생을 비롯하여 약천 남구만선생, 추담 오달제선생, 홍계희 선생, 이일장군, 사주당 이씨, 유희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또한 조선 중종 때 개혁에 실패하여 목숨을 잃으신 조광조 선생의 묘역도 이곳 모현에 모셔져 있습니다.

정답: × 없다 상현동에 모셔져 있다.

 

  1. 포은문화제는 3일 동안 포은선생 묘역에서 열립니다. 올해로 15회째 열리는 포은문화제는 천장행렬을 하이라이트로 한시백일장 청소년 국악경연대회와 더불어 다채로운 공연과 다양한 체험 풍성한 먹거리가 일품입니다. 그러나 포은선생의 제례는 충렬서원에서 지내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정답: × 묘역에서 지낸다

 

  1. 조선의 3번쩨 임금이 된 태종 이방원이 포은선생을 회유하기 위해 하여가를 읊었고 그에 답가로 포은선생은 단심가를 지었는데 시조의 내용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구절로 되어있습니다.

정답: × 위 내용은 백로가

 

  1. 이 옷은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할 목적으로 1996년 개관하였습니다. 전통문화를 전공한 20여명의 학예직을 선발해 고고, 역사문헌, 미술사, 민속생활 등 전 분야의 자료를 폭넓게 확보하여 연구, 전시하고 있으며, 경기도내의 문화 유적에 대한 기본조사와 발굴조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6개의 상설 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연구시설, 수장고, 도서실, 강당 교육실 등이 있습니다. 현재 18.000여점의 소장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기도 박물관은 국립박물관이다.

정답 × 도립박물관

 

  1. 삼국시대부터 용인의 지명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습니다. 백제 때는 ‘멸오’라 하였고, 고구려 때는 ‘구성’, 신라 때는 ‘거서’라 불렀습니다. 고려를 거쳐 조선 태종 1414년에 ‘용인’이라는 지명이 탄생되었는데 용인의 ‘용’자는 고려시대 용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정답 ○

 

  1. 올해로 15회째인 포은문화제는 포은선생의 충절과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모현면 능원리 포은선생 묘역에서 3일 동안 개최됩니다. 이 문화제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것은 우리나라 전통 장례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의식으로, 포은선생의 묘를 옮기기 위한 것으로 여러 사람들이 꽃상여를 어깨에 메고 묘역까지 이어지는 의식을 천장행렬이라 합니다.

정답 ; O

 

  1. 용인 서쪽은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로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 형제봉, 등 400m 이상의 산들이 있고, 동쪽에는 남한산성에서 뻗어 나온 법화산, 석성산, 부아산, 함봉산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사궁산, 쌍령산, 경수산, 구봉산, 등이 안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산 중에서 용인의 서쪽을 지키고 있는 광교산입니다.

정답 O

 

  1. 용인 서쪽에 있는 탄천과 신갈천은 신갈저수지를 만들고 용인 중앙은 금학천과 경안천, 진위천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저지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용인시의 동남부에는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청미천이 동남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용인을 가로 지르는 경안천은 경기도 광주와 팔당댐을 지나 한강으로 흐르는데 이 경안천의 발원지는 안성 칠장사입니다.

정답 × 해곡동 문수샘

 

  1. 용인은 3개의 고속국도와 4개의 국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서북쪽에서 남북으로 지나고 영동고속도로가 신갈에서 동서로 지나고 있습니다. 또한 국도 45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고 국도 42호선이 동서로 지나고 있다. 또한 42호선과 연결되는 17번국도와 용인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민자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여기서 신갈에서 경부고속도로로 통하는 톨게이트 이름은 신갈톨게이트입니다.

정답 × 수원신갈톨게이트

 

  1. 용인을 상징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용인시 마크는 첨단기술과 녹색자연을 상징합니다. 시화는 분홍철쭉, 시조는 꿩, 그리고 용인을 상징하는 나무는 벚나무입니다.

정답 × 전나무

 

  1. 용인에는 전통재래시장이 5일에 한 번씩 열립니다. 백암지역에서 열리는 백암5일장은 12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일과 6일에 열리는 백암 장은 한때 우시장으로 전국에서 유명세를 떨칠 정도로 붐볐다고 합니다. 우시장의 발달과 함께 백암지역은 토종순대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토종순대의 이름은 병천순대라고 합니다

정답 X 백암 순대

 

  1. 용인은 1970년부터 돼지사육두수 전국 1위가 될 만큼 돼지 사육을 많이 했던 고장입니다. 지금도 백암지역이나, 포곡, 모현지역에 가면 돼지 사육농가를 볼 수 있는데, 돼지 부산물로 만든 용인 토종순대는 전국으로 널리 분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음식이 됐습니다. 이러한 용인토종순대의 맛을 느끼며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은 ‘엽기떡볶이’입니다.

정답 ×

 

  1. 조선시대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에 ‘용인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이 산은 뾰족한 바위로 되어있습니다. 이 산에는 흰뱀(백사)가 많이 살고 있어서 한 여름 비가 많이 내려 큰물이 지면 산 아랫동네로 뱀 떼가 내려와 사람과 가축에게 해를 입혔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새가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산을 조비산 또는 역적산, 쪽비산 이라고도 부릅니다.

정답 ○

 

  1. 이곳은 에버랜드 뒤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 뒤쪽으로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백련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의 벚꽃을 배경으로 ‘벚꽃문화제’가 열리기도 하였는데, 용인 팔경 중 여덟 번째 해당하는 이곳의 행정구역을 가실리라고 합니다.

정답 ○

 

  1. 용인시의 행정구역은 3구 2읍 6면입니다.

정답 X 1읍

 

  1. 십청헌 김세필 선생님의 시호는 문간공이며 기묘명현 중 한사람입니다. 연산군 재위시절 갑자사화(1504년0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 중종 임금 때는 기묘사화로 조광조선생을 사사한 과오를 규탄하여 또다시 유배 되었습니다. 남기신 유명한 말씀으로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답 X 잘못을 저질렀으니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 (과즉물탄개)

 

  1. 이분은 주민전권 대사와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특명전사로 참석한 뒤 군부대신에 임명되신 분으로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을사5적의 처형을 주장하고 조약파기를 요구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자결하셨던 이분은 이한응 선생님입니다.

정답 X 민영환

 

  1. 기흥구 상하동에는 ‘풍창 부부인 조씨의 묘소’가 있습니다. 부부인은 왕비의 친정어머니나 왕의 적자인 대군의 부인에게 주는 작호입니다. 풍창 부부인 조씨는 숙종의 장모이며 이 분의 친정 어머니입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갈등을 그린 드라마도 많이 제작되었는데, 왕비에 책봉되었다가 서인으로 강등되고 다시 왕비에 책봉되는 굴곡진 삶을 살았던 이 분은 장희빈입니다.

정답 X 인현왕후

 

  1. 2004년 11월에 처음으로 이곳에 용인의 전철역이 개통되었습니다. 2011년 12월에는 지하철 분당선의 연장으로 죽전 ~기흥 구간 (총 5.1km)에 기흥 신갈 구성 보정 죽전역이 개통되어 전철이 운행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신분당선의 연장으로 성남에서 수지를 지나 수원까지 이어진 지하철 노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용인에도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데, 용인에서 제일 먼저 개통된 지하철역은 죽전역입니다.

정답 X 보정역

 

  1.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자연석이나 일부만 다듬은 큰 돌을 세우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대개 단독으로 세워지지만 여러 개의 돌을 열을 지워 세우거나 원형으로 배치하기도 하였고, 고인돌 옆에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용인 지역의 선돌은 크게 5군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1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정답 O

 

  1. 이것은 기흥구 동백동과 포곡읍 가실리 및 마성리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이며, 노고성, 마고성으로도 불립니다. 2011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신라의 6~7세기경 한강유역 진출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석성산성입니다.

정답 X 할미산성

 

  1. 호암 미술관 앞의 2만여평에 자리하여 우리나라의 궁궐과 사대부의 정원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정원 박물관입니다. 보화문을 비록하여 관음정 법화지 호암정 등 우리나라의 전통정원 기법에 의하여 옛 조상들이 자연을 이용한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2013년부터는 벚꽃문화제가 개최되어 더욱 각광받고 있는 이 정원의 이름은 부용지입니다

정답 X 희원

 

  1. 한국을 대표하는 놀이동산이자 온 국민의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 곳은 1977년 경기도 국민관광지로 선정되었습니다. 45만평의 대지에 세계 각지의 주요도시를 테마로 각종 놀이 시설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테마파크는 디즈니랜드입니다.

정답 X 에버랜드 

(17019)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199(삼가동) 용인문화예술원 1층

TEL. 031-324-9600 FAX. 031-324-9634 E-mail. ycc5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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