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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제   목
    제15회 포은문화제 포은골든벨 예상문제(단답형)
  • 작성자
    용인문화원
  • 작성일
    2017.05.10
  • 파  일

본문 내용

 

포은골든벨 문제

 

  1. 처인구 맹리에는 조선시대 최고 뛰어난 문사로 알려진 허균과 그의 아버지 허엽, 두 형 허성과 허봉의 묘가 있습니다. 그 중 조선 사회의 절대 권위에 도전한 대표적 풍운아이자 이단이며 천재였던 허균이 쓴 소설로 당시 정부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그의 개혁사상을 반영하며 적서구분으로 인한 신분적 차별을 비판하면서 탐관오리에 대한 징벌과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구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설의 주인공인 이 사람은 율도국의 새로운 왕이 됩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홍길동전)

 

  1. 조선 전기의 문신인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강원도 관찰사로 강릉에 있으면서 동해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 두부를 만들어 먹고 손님에게 대접했습니다. 그 두부가 아주 맛있다는 소문까지 나자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이 두부의 이름은 허엽의 호를 따 ‘00두부’라 하였습니다. 이 두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초당두부)

 

  1.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훌륭한 학자나 충신을 제사 지내던 곳을 서원이라고 말합니다. 용인에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배향하는 충렬서원, 조선 중기 중종 때 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기묘사화로 반대파인 훈구파의 역모로 죽임을 당한 정암 조광조 선생을 배향하는 심곡서원이 있으며 , 영조 때 노론의 대표학자인 도암 이재를 배향하는 이 서원이 이동면 천리에 있었으나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없어진 후 복원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서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힌트-이재의 호를 잘 생각해 보세요.

(한천서원)

 

  1. 이 사람의 묘는 백암면 석천리에 있으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전라도 부안 땅에 내려가 초야에 묻혀 학문 연구와 저술에 일생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 곳에서 백성들의 사회 실상을 직접 체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라가 잘 살고,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국가체제의 개혁안인 ‘반계수록’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유형원)

 

  1. 조선 정조 임금 대의 어영대장을 지낸 무신으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이 사람이 살던 가옥이 있습니다. 이 가옥은 안채 남쪽 지붕의 망와에 ‘건륭 18년 계유일 조작’이란 글이 양각된 기록으로 보아 영조 29년, 1720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주국 장군)

 

  1. 이 곳은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로 ‘숨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천주교 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며 형성된 교우촌입니다. 또,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사제성소의 꿈을 키웠던 곳이며 사제가 되어 돌아온 후 맨 처음 미사를 드린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입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은이성지)
  2. 문수산 정상에서 남쪽 내리막길로 약 150m 지점에 두 개의 암벽에 각 1구씩 서로 대칭을 이루며 양각으로 보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마 그 사이 중앙에 입체의 불상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위에 새겨진 이것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문수사지 마애보살입상)

 

  1.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에는 마을 한가운데 오른손은 가슴에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하고 왼손에 감로정병(약병)을 들고 있는 큰 규모의 석불인 약사여래입상이 있습니다. 석불 앞에서 자연석 불단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제물을 차려 예불을 올리거나 치성을 올렸는데 불상 주의를 빙 둘러 돌기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불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곳 미평리는 ‘미륵부처가 서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람들에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은 무엇일까요? (미륵뜰)

 

  1. 이 곳은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하여 지방에 세운 조선시대 중등과정의 공립학교인 향교로 용인에 있는 두 곳 중 한 곳입니다. 1910년대 현 양지초등학교의 전신인 ‘추향의숙’이 이 곳에 설립되었고 1950년대에는 용동중학교의 전신인 ‘신생학원’이 이곳에서 운영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양지 지역의 교육기능을 담당하였던 곳입니다. 이 향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양지향교)

 

  1. 원삼면 사암리에 나란히 서 있는 커다란 돌로 “어느 부잣집에서 탁발승을 구박했더니 중이 혼자말로 ‘지금 그곳에 큰 돌 셋을 세우며 아주 큰 부자가 될 것이다’라 하기에 그대로 했다가 부자가 쫄딱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보호하며 마을의 제사를 지내거나 치성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사암리 선돌)

 

  1. 마을이나 절 입구, 길가에 세워 놓은 사람머리 모양의 기둥을 말하며 장승이라고도 부르며 융통성이 없어 답답한 사람을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벅수)

 

  1. 옛 사람들은 무덤을 지키는 수호석으로 호랑이, 사자, 말, 양과 같은 동물모양의 석물을 묘 앞에 세웠습니다. 그것들 중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후손들이 많이 번성하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은 석물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동물모양의 석물일까요? (임신한 암 양)

 

  1. 우리나라의 전통 장례 문화로 지금의 영구차(운구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곳에 관을 넣고 여러 사람들이 이것을 짊어지고 무덤까지 갑니다. 워낙 비용부담이 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보관하는 이것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상여)

 

  1. 상여가 나갈 때 앞에서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노 어~허노 ,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상여꾼들의 소리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이 세상을 떠나는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때 상여의 앞이나 위에서 상여꾼을 지휘하는 사람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선소리꾼 또는 요령잡이)

 

  1.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용인에서도 3월 21일 새벽 3시에 주민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 용인 전역으로 확산되어 나갔으며 현재 이곳은 3∙1만세운동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해마다 이곳에서 기념식을 갖고 만세운동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용인에서 만세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이곳은 어디일까요? (좌전고개)

 

  1. 처인구 원삼면에 있는 이곳은 용인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홍보하고 도시인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하기위해 식물원을 구축하고 요소요소에 원두막과 같은 농촌 풍경을 자아내는 각종 설치물을 조성하여 자연스럽게 농촌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용인농촌테마파크)

 

  1. 처인구 백암면에 있는 식물원으로 1,000여 종이 넘는 자생식물을 각각의 생태 환경에 맞게 고려하여 심고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계절에 따른 야생식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2001년 희귀멸종위기 식물 서식지 및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한택식물원)

 

  1. 이곳은 MBC의 대표적인 역사드라마를 촬영하는 곳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별 건축양식을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실제에 가깝도록 재현했으며 2011년부터 외국인관광객과 내국인에게 개방되어 한류 문화의 중심지이자 관광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대장금파크 .....얼마전까지 MBC드라미아 였다.)

 

  1. 이 날은 농부들이 봄부터 여름까지 농사일을 하다가 음력 7월 보름에 일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고 각종 놀이를 즐기며 하루를 보내던 농민들의 여름철 명절로 백암에서는 장이 열려 백암 사람뿐 아니라 인근의 죽산, 이천 사람들까지도 몰려들어 난장판이 벌어지고 남사당패의 공연이 펼쳐지는 등 흥미로운 오락과 흥행이 있어 농사에 지친 주민들에게 최대의 잔칫날이었습니다. 이 날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백중)

 

  1. 조선시대 안성 죽산현에 속했던 전통 장으로 배관장, 배감장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전국 최대의 우시장이 들어서 활발하게 소 거래가 이루어졌고 각지에서 의류, 생선, 막걸리, 과일장수들이 몰려들어 크게 번창하였다고 합니다. 1일과 6일에 열리는 전통 5일장으로 맥을 이어가는 이 전통시장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백암장)

 

  1. 처인구 모현면 갈담리. 초부리와 광주시 도척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이 산의 자락에는 용인 외국어 대학교와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일기를 쓴 이사주당의 묘소와 그의 아들 언어학자인 유희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지금은 태교도시 용인에 걸맞게 태교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이 산은 ? (정광산)

 

  1. 22. 지금의 일본은 과거에는 ‘작다’ 라는 뜻으로 ‘왜’라고 불렀습니다. 그 왜나라의 군사는 왜군이라고 하죠. 그러면 노략질을 일삼던 왜의 도적들을 부르는 말은 무엇일까요?

( 왜구)

 

  1. 정암 조광조 선생님께서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절명을 하실 때 지으신 시입니다. 이 시조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어버이 섬겨 사랑하듯 하였고

백성 걱정 돌보기를

식구걱정 돌보듯 하였노라

밝은태양 대지를 환희 밝혀주니

내 정성어린 속마음

거울처럼 비춰지네. ( 절명시)

  1. 24. 정암 조광조 선생님을 제사 지내는(배향)서원은 심곡서원으로 수지구 상현동에 있으며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도 없어지지(훼철) 않았습니다(존속.) 이 심곡서원이 2015년 1월 28일에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적 몇 호로 지정 되었을까요?

( 530호)

 

  1. 25.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로 태교일기를 쓴 이사주당은 남편인 유한규와 결혼한 후 당호를 어질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희현당’에서 주자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뜻의 ‘사주당’으로 바꿀 만큼 경서와 역사서를 두루 탐독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죽기 전 편지 한 묶음과 남편의 “성리문답”, 자신이 베낀 이이의 이 책을 입던 옷과 무덤에 넣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자신이 손수 베낀 이 책은 무엇일까요? 힌트-초학자들의 입문서로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비결이라는 뜻 (격몽요결)

 

  1. 26. 조선시대 후기 첩실된 서원이 너무 많아 폐단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군역, 공납, 붕당의 폐단이 되었던 서원들을, 흥선 대원군은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된다면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과 함께 전국에 사액 받은 서원 47개만 남기고 모두 문을 닫게 했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 (서원철폐령)

27 . 상현동 심곡서원에 배향된 조광조 선생님은 돌아가신 후 인종 때 복관되고 명종 때에 몇 번의 논란이 일다가 선조 초에 기대승 등의 상소로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됩니다.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는 중학교는 정암 조광조 선생님의 시호에서 교명이 유래되었습니다, 시호와 관련 있는 이 학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문정 (중학교)

 

  1. 28. 이분은 시호는 문간공이며 기묘명현 중 한사람이며 연산군 재위시절 갑자사화(1504년0에 연루되어 유배되고 , 중종 임금 때는 기묘사화로 조광조선생을 사사한 과오를 규탄하여 또다시 유배 되었습니다. 남기신 유명한 말씀으로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과즉물탄개)’라는 말씀을 하셨다. 죽전동에 묘소가 있는 이분은 누굴까요? (십청헌 김세필)

 

  1. 29. 조선 중종때의 명현으로 호는 음애, 기흥구 지곡동이 고향입니다. 중종반정 후 홍문관 부제학, 승정원 승지, 우참찬을 지내면서 기묘사림인 정암 조광조 선생과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관직을 삭탈당하고 옥에 갇혔던 이분은 누굴까요? (음애 이자)

 

  1. 30. 민영환 선생님은 주민전권 대사와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특명전사로 참석한 뒤 군부대신에 임명되신 분으로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을사5적의 처형을 주장하고 조약파기를 요구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자결하셨던 분입니다. 이분의 묘소는 기흥구 어디에 있을까요? (힌트..마곡과 북동을 합해서 만들었어요) -( 마북동 )

 

  1. 31. .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우리의 외교권을 강탈하기 위해 맺은 조약은 을사조약입니다. 그 후 고종이 일본제국주의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우리의 군대를 해산시켰는데, 용인의 독립운동가 김혁 장군도 군대가 해산되는 바람에 용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군대가 해산된 때는 언제 일까요? (1907년)
  2. 32. 1919년 3월21일 용인 좌전고개에서 용인의 1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4월 초까지 용인의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그중 기흥지역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끌고 난 후 일본 경찰에 쫒겨 만주에 가서 독립운동을 한 오석 김혁 장군이 있습니다. 이러한 김혁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기흥구 구갈동에 공원을 세웠습니다. 여기에는 ‘오석 김혁 선생 독립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공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김혁 공원 )

 

  1. 33. 이 사람들은 17세기 무렵부터 등장한 사람들로 학문이라는 것은 실제 생활에 도 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당시 유학만을 중시하던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농업. 상업. 역사. 지리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유형원. 이익.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안정복 . 유희 선생 등을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무슨 학자라고 부를까요? (실학자)

 

  1. 34. 광교산 서쪽에는 서봉사라는 절터가 있습니다. 서봉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하여 의병들의 근거지가 될까 염려하여 불 태워진 절입니다. 이곳에는 보물 제9호로 지정된 탑비가 있습니다. 서봉사에서 시무하시던 스님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비인데 이 스님은 누구일까요? -( 현오국사)

 

  1. 35.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용인향교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님과 여러 성현들을 제사 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공자의 위패는 대성전이라는 건물에 모셔져 있는데 ,이 건물의 지붕은 두면이 서로 맞대고 있는 지붕이라는 뜻의 ㅇㅇ지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붕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할까요? ( 맞배지붕 )

 

  1. 36. 언문학자 유희는 어머니 이사주당이 한문으로 쓴 태교신기를 이듬해 장과 절로 나누고 한글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또한 언문학자로 이 책을 저술하여 이 전에 자음 위주의 연구를 극복해, 처음으로 우리말 위주의 연구를 시도한 책으로 조선 시대 국어학 연구서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이 책은 무엇일까요?

(언문지)

 

  1. 37. 부부인이란 호칭은 정1품으로 왕비의 친정 어머니와 왕의 적자인 대군의 부인에게 주는 작호입니다. 그렇다면 왕비의 아버지나 정1품 공신에게 주는 작호는 무엇이라 할까요?

( 부원군 )

 

  1. 기흥구 보정동에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용인 지역에 세력을 떨칠 때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무덤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이는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무덤들인데, 이처럼 아주 오래된 무덤들이 모여 있다는 뜻으로 이렇게 부릅니다. 이렇게 모여 있는 무덤들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보정동) 고분군)

 

  1. 이 산은 불교 경전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며, 기흥구의 마북동, 청덕동, 언남동, 수지구 죽전동,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등 3개 구에 걸쳐있는 산입니다. 산의 형세는 신하가 임금에게 조례를 올리는 형상으로 명당이라고 하는 길지인데, 2002년부터는 이산의 이름을 딴 문화축제도 있는데 이 산의 이름은 무얼까요? ( 법화산 )

 

  1. 수지구 신봉동의 이 행사는 1990년 수지구가 도시화 되면서 전통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뜻을 모아 2003년부터 도시형행사로 매년 음력 1월15일에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주민 기원제와 소원지 쓰기, 풍등 날리기, 난타, 밸리댄스, 한국무용, 댄스 스포츠 등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이 민속놀이는 무엇일가요?

(신봉동 정월대보름맞이 )

 

  1. 용인의 여러 인물 중 번암 채제공선생님의 묘소가 처인구 역북동에 있습니다. 번암 채제공 돌아가신 후에 정조대왕의 친필로 채제공의 명복을 비는 글을 새긴 것으로, 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전액은 허목의 전서풍으로 기이하고 예스러운 맛이 나는데, 비문은 해서체로 음기는 비의 앞면에 음각되어 있습니다. 이 비석의 이름은 무엇일가요?

- ( 채제공 뇌문비 )

 

  1. 이 사람은 비운의 죽음을 맞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복권하였고 이때부터 어지러운 당론을 없애는 의리를 밝히고 탐관오리를 징벌, 백성의 어려움을 근심하며 권력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전력투구하였습니다. 수원 화성 성곽 축성에 모든 설계 및 경영을 지휘하였으며, 신해통공을 통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고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도 했던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 번암 채제공 )

 

  1. 이동면 화산리에서 출생, 호는 국은이며 본관은 전의입니다. 16세에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고 28세 때 영국·벨기에 공사관의 참사관으로 부임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전력을 다했으나 기울어져가는 대세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1905년 5월 12일 형과 부인에게 유서를 남기고 독약을 먹고 순국한 이 사람의 순절은 여러 순국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충군보국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 국은 이한응 )

 

  1. ‘나비박사 석주명’이 이 사람의 그림 속에서 무려 37종의 나비를 암수까지 구별해 낼 정도로 뛰어난 관찰력과 정확한 세필로 그린 나비그림이 특징으로, 병풍을 그릴 때 꼭 열 마리 이상은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려놓은 나비가 날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하는 이 사람은 본관은 의령이며 약천 남구만 선생의 6대손으로 철종과 고종 때 활동했던 문인 화가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일호 남계우 )

 

  1. 정조 때 지방유림의 공의로 도암 이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동면 천리에 창건하여 사액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최근 도암 이재 선생의 후손들이 복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서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 한천서원 )

 

  1.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도암 이재 선생이 지은 관혼상제에 관한 종합참고서로, 사계 김장생의 <상례비요>의 체재를 참고하면서 관례와 혼례를 덧붙이고 여러 학설을 참고하면서 이 책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사례참고서로서, 조선 후기에 가장 널리 보급된 예서로 평가되는 이 책의 이름은 무엇일가요?

- 사례편람

 

  1. 고려 시대 후기의 대 문장가인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명종이 신하들에게 <소상팔경>시를 짓도록 하였을 때 어린 나이로 장편을 지어 이인로와 더불어 절창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주필(글씨를 흘려서 빨리 씀)로 이름난 시인으로 무신의 난 이후의 피폐한 농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도원가>가 유명합니다. 이 사람의 묘 앞 하단에 고총이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순장자의 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매호 진화

 

  1. 1984년 1차로 호암미술관에 의하여 발굴 조사되어, 10세기를 전후한 가마터로 밝혀졌으며 우리나라 도자역사 편년을 10세기 전후로 끌어 올린 곳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요벽, 건물지, 요지가 확인되어 대체적인 규모까지도 확인되었습니다. 백자를 굽던 가마터로서 현존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갑발과 도편 등의 퇴적물이 쌓여 작은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 서리중덕 고려백자 요업지

 

  1.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때의 군창이었던 곳으로 몽골의 제2차 침공을 승장 김윤후와 부곡민들이 힘을 모아서 몽골군을 맞아 싸우던 중, 화살을 쏘아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함으로써 몽골의 제2차 침공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곳에서의 승리는 40여년에 걸친 항몽전쟁 가운데 최초의 승리이고 용인 지역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이룩한 승리하는데 의의가 있으며 후에 의병운동의 선구가 되었습니다. 1977년 10월 12일 경기도 문화재 사적 제 44호로 지정된 이곳은 어디일까요? - 처인성

 

  1. 주변 마을에서는 이 고분을 오래 전부터 고려장터라고 불렸으며 일부에서는 천장에 덮개돌이 있어 기반식 지석묘라 지칭하기도 하였으나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용인관내의 지표조사에서는 돌방무덤으로 분류하엿습니다. 또한 1986년도 한양대와 경기도에서 실시한 백제지역문화유적 조사에서 이동면 서리 하반 고분을 백제시대의 유물로 구분하여 처음에는 이 무덤도 그와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자료로 규정하였다. 판석이나 할석을 이용하여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봉토를 씌운 동남방향의 무덤으로 고구려 시대의 영향을 받은 무덤으로 확인된 처인구 운학동에 있는 이 무덤은 무엇일까요? - 운학동 돌방무덤

 

  1. 신라 문성왕 때 염거선사가 창건하였고,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3층석탑 1기와 보살상, 철인 3위를 조성하면서 중창하였습니다. 현재 철인 3위 중 1위는 도난당하고 2위는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 박물관에 있는데, 이 철인은 도선국사가 이곳의 산세와 자리에서 솟아나는 기운이 강해 이를 누르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1990년에 본래의 사찰이 자리하였던 산 아래에 대웅전을 지으면서 윗채와 아래채로 전각이 나누어져 윗채에는 극락전, 산신각, 굴암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파손된 3층 석탑이 남아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굴암절이라고도 불리는 이절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용덕사

 

  1. 대한불교열반종의 총본산으로 부처의 공덕으로 민족화합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입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열반전, 대각전, 만불전,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 절은 머리만 8m에 이르는 거대한 불두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통향나무로 다듬어 만든 길이 12m의 열반전의 와불, 세계 각국의 불교 성지와 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등에서 세계 각국 불교 신도들이 돌을 가져와 쌓아 올린 통일의 탑, 서울 올림픽 때 타종했던 무게 12톤에 이르는 통일의 종 등이 유명합니다. 이 절의 이름은 무엇일가요? - 와우정사

 

  1.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 산정동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 열리는 이 놀이는 풍농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민속놀이입니다. 주민 간 단합을 다지는 대동의 의미만의 아니라 당제와 같은 주술적 의미가 강한 엄숙함이 배어 있는 풍습으로, 먼저 두레가 대동우물에서 우물고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는데 집에 들어가 낭대를 세우고 마당 -> 우물고사 -> 장간고사 -> 부엌고사 -> 마당 순서로 진행됩니다.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암줄을 잡고 성인남자들이 숫줄을 잡고 시작하여, 여자가 지면 보리흉년이 난다는 속설 때문에 첫 번째는 남자가 이기지만 나머지 두 번은 여자가 이기는 놀이입니다. 이 놀이는 무엇일까요? - 산정동 줄다리기

 

  1. 조선후기 문신인 이재 선생은 본관은 우봉, 자는 희경, 호는 도암. 한천으로 숙종 때 알성 문과에 합격을 하고 관직에 진출하였습니다. 도승지와 대사헌, 대제학 등을 지내시고 특히, 예학에 밝아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의 저서 중에서 ‘네 가지 예법을 생활에 편리하게 이용하라’는 뜻으로 ‘사례편람’이란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그전에 중국의 예법책이 조선과 맞지 않는 점이 많다고 생각하여 여러 학설을 참고 하여 우리나라에 맞게 지은 관혼상제 예법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재 선생의 사례편람 중 사례란 관-관례/혼-혼례/상-상례 그 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례 또는 제사)

 

  1. 용인의 정중앙에 위치한 중앙동에는 남동과 김량장동이 있고, 유림동은 고림동과 유방동을 합쳐진 이름입니다. 역삼동은 역북동과 삼가동을 합쳐 부르는 행정동으로서 중앙동, 역삼동, 유림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인면으로 바뀌었는데, 용인면 이전에 부르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수여면

 

  1. 일제강점기인 1930년 12월에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여주의 쌀을 수탈하려는 목적으로 부설한 이 철도는 1942년 수인선과 함께 조선철도에 양도되어 두 선을 합쳐 경동선이라 불렸다가 광복이후 교통부 철도국 소유로 변경되었습니다. 1971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여 1972년 3월 31일에 전 구간이 폐선되었습니다. 용인에는 덕곡역, 신갈역, 어정역, 삼가역, 용인역, 마평역, 양지역, 제일역 등이 있었던 이 철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수여선

 

  1. 포은 정몽주 선생의 종손으로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갔지만 탈출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만주동포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정철수

 

  1. 이동면 어비리는 지형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생겼다고 하여 옛날부터 어비촌이라고 불렸는데, 묵리, 서리, 천리에서 흐르는 물이 어비촌 한가운데로 흘려들자 1972년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송전에서 묘봉리로 들어서는 언덕길에서 보이는 넓은 수면위에 해가 붉은 빛을 드리우다 사라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용인8경중 2경으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해지는 이 모습을 4자의 한자어로 무엇이라고 할까요? - 어비낙조

 

  1. 이것은 용인시가 새 청사를 건립하면서 시민들의 문화복지를 실현하고 다양한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설로 접근성이 용이한 이곳에 건립한 것으로, 공연장, 전시실, 회의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3층에 위치한 마루홀은 30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아동극 가족극 위주의 다양한 공연물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마루’라는 이름처럼 온 가족이 행복하고 자유롭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 용인시문화예술원 , 문화예술원

 

  1. 용인시의 인구가 늘고 공연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89년 용인 지역에 규모를 갖춘 공연장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개관 이래 지역의 굵직한 각종 문화행사들을 소화하며 용인시민의 문화향유의 장으로서 기능을 해 온 이곳은 2000년대 들어서 수지여성회관, 죽전야외음악당, 포은아트홀과 같은 새로운 공연시설이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지게 되었지만 용인 동부 지역의 공연문화의 중심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온 이곳은 어디일까요?

- 용인문예회관 처인홀

 

  1. 숙종 때 소론의 거두로 자는 운로, 호는 약천, 본관은 의령이다. 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부 좌윤을 지냈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 · 허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남해로 유배되었습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까지 지냈다.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릴 것을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생을 보냈습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 한 수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이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약천 남구만

 

  1.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3학사 중 한 사람입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끝까지 척화를 주장했습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한 뒤, 청에서 척화론자의 처단을 요구하자 스스로 척화론자로 나서서 윤집, 홍익한 등과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고문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항변하다 심양성 서문(西門) 밖에서 처형당했다. 이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추담 오달제

 

  1. 사주당은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는 부모 아래에서 사서삼경을 섭렵하였습니다. 출가하여 네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을 바탕으로 삼고,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태교신기’를 정리하였습니다. 글이 완성된 후 아들 유희가 장과 절을 나누고, 한글 해석글을 덧붙여 태교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태교신기

 

  1. 이 사람은 조선 숙종·영조·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주입니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죽산에서 난을 토벌하여 분무공신 1등이 되었고 영조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의 무덤은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덤 앞에 보기 드물게 무인석이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오명항

 

  1. 해주 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오희문의 일기집입니다. 선공감 감역을 지낸 오희문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으로 피난하며 10여 년간 쓴 일기로 보물 1096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개인의 사적인 일을 기록한 일기지만 당시의 전란상황, 사회상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기록들이 함께 남아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이기도 한 이 책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쇄미록

 

  1. 조선시대에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기어 궁가, 종묘, 문묘, 향교, 서원 등의 건물 앞에 세웠던 이 비석은 무엇일까요?

정답: 하마비

 

  1. 교통수단의 발달사와 문화를 학습할 목적으로 세운 우리나라 유일의 교통전문 박물관입니다. 처음에는 자동차 박물관으로 시작하여 주요 컨셉인 국내외 희귀자동차 30~40여점을 전시물외에 오토바이, 자전거, 마차 등의 실물과 모형을 전시하고 있으며, 각종 부품과 자동차 장식품 700여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교통문화의 이해와 어린이 교통안전캠페인 및 교육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삼성화재교통박물관

 

  1. 조상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등잔을 모아 전시하고, 등잔문화를 알리기 위하여 수원 화성성곽의 이미지를 따서 외형을 건축하여 설립한 등잔 전문 박물관입니다. 지하1층, 지상 3층 가운데 1·2층은 전시공간이며 지하층은 세미나 및 각종 공연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전시실에는 300여점의 등잔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한국등잔박물관

 

  1.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삼림욕, 등산, 생태체험, 숲속놀이 등을 통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곳으로 지속가능한 산림자원의 보존과 이용을 도모하고, 산림의 진정한 가치를 폭넓게 인식시킴으로써 시민들의 건강증진과 정서함양에 기여하고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용인자연휴양림

 

  1. 섬유미술과 판화 작품을 통해 예술감상과 미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현대 섬유 미술 및 판화전문 미술관입니다. 설립자 송번수 관장의 작품 외에 박길웅, 박서보, 윤형근의 작품이 주요 소장품을 이루고 있는 이 미술관은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마가미술관

 

  1. 이곳은 본래는 쇄포면(灑布面)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삼으로 직조한 베와 목화에서 뽑아낸 실로 직조한 무명 천을 잿물에 삶아내고 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널어 빛이 바래도록 포쇄하던 곳이라고 한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그 후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해를 능원리에 안장한 후부터는‘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이것으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어디일까요?

정답: 모현

 

  1. 독도를 둘러싼 분쟁은 지금 뿐만 아니라 약 3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조선 숙종 때 일본은 독도는 물론 울릉도 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겼는데요. 그 당시 이 독도를 지켜낸 사람은 어부 이면서 조선 수군이었던 이 사람입니다. 일본 막부의 장군에게서 울릉도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라는 문서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갔고 관리를 사칭한 혐의로 사형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남구만 선생님의 반대로 죽음을 면했던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안용복

 

  1. 조선시대에 지방의 유림에 의해 만들어 진 사립학교는 서원입니다. 지역민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 태어나거나. 살았거나. 묘가 있는 곳에서 서원을 세워 지사를 지내고 학생들이 공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조선 선조 9년(1576) 이계, 이지를 비롯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 선생과 조광조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처음에는 죽전동에 세워져 이름도 <죽전서원>이라 불리다가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되어 선조 38년에 정몽주 선생의 묘소아래 중건되었습니다. 오늘의 행사의 주인공인 포은 선생님을 주 배향 인물로 하는 모현에 있는 서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요?

정답: 충렬서원

 

  1. 차경의 원리를 바탕으로 옛 지형을 복원하고 석단, 정자, 연못, 담장 등 건축요소를 담고 있는 정원과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듯한 자연이 어우러지는 이곳은 호암미술관 내에 있는 전통정원입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곳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희원

 

  1.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 이었던 서원은 현재 제향기능만 남아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포은선생을 모시고 있는 충렬서원에서도 싱그러운 봄과 풍성한 가을이 되면 선현께 제를 올리는데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정답: 향사

 

  1. 모현면 능원리 안골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그러나 농토가 넓지 않아 특용작물이나 신지식 농업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매년 가을이면 호박을 테마로 다양한 호박음식과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개최하는데 호박 탈 만들기, 호박 초콜릿 만들기, 호박인절미, 호박 들고 릴레이 등이 펼쳐지는 이 축제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호박등불마을축제

 

  1. 이 분은 1922년 카톨릭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서 1951년 대구 대교구 김천 천주교 주임신부를 지내고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봉사하는 마음과 한국의 아픈 역사 현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젊은 지식인과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셨던 이 분은 2009년 2월 선종하시고 모현면 오산리 용인천주교묘역에 안장 되었습니다. 이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김수환 추기경

 

  1. 2004년 11월에 처음으로 이곳에 용인의 전철역이 개통되었습니다. 2011년 12월에는 지하철 분당선의 연장으로 죽전 ~기흥 구간 (총 5.1km)에 기흥 신갈 구성 보정 죽전역이 개통되어 전철이 운행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신분당선의 연장으로 성남에서 수지를 지나 수원까지 이어진 지하철 노선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용인에 처음으로 개통된 전철역은 어디입니까?

정답: 보정역

 

  1. 아주 옛날 옛적 ‘삼천갑자동방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글자 그대로 갑자년을 삼천번 산 것이니 햇수로 따지면 약 18만년을 산 사람입니다.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가 천상천하를 막론하고 큰 골칫거리가 되었기에 모두가 그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고 합니다. 18만년을 산 삼천갑자 동방삭이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가 숯을 냇물에 씻어서 궁금하게 여긴 동방삭을 잡아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용인시 수지 광교산과 구성법화산에서 시작되어 성남시를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총 90리의 한강 제 1지류인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탄천

 

  1. 해마다 용인시청 광장에서 정보통신기술과 게임 산업이 융합된 창조경제 및 건전한 e 스포츠 문화정착 우수과학인재 양성에 기여하고자 열리는 축제로 과학영재 체험 한마당, 사물인터넷 체험관, 드론체험관 휴머노이드 로봇체험관등 기초과학이 어울러지는 축제는 무엇인가요?

정답: 용인사이버축제

 

  1. 용인에는 초등학교가 100개가 있습니다. 이런 초등학교와 학교 주변 200m이내의 구역에 대하여 안전하고 위생적인 식품판매 환경의 조성으로 어린이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 운영하고 있는 일정한 구역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정답: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그린푸드존)

 

  1. 이것은 지하철과 버스의 단점을 보완한 교통수단으로써 주로 15~20km의 도시구간을 운행하며 수송능력이 우수하고 대기오염 및 진동소음이 적은 친환경 첨단 교통수단입니다. 용인에서는 기흥역과 에버전대역을 오고가는 이 교통수단의 대표적인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경(량)전철 에버라인

 

  1.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3백 년 동안이나 명성과 문화의 중심지역이 되어 유풍이 크게 떨치고 학자가 무리지어 나왔으니, 하나의 작은 중화였다”라고 하여 우리나라 학문의 중심지로 평가한 이 도는 어디일까요?

정답: 경기도

 

  1. 조선 중종때의 명현인 정암 조광조 선생을 비롯하여 유학자로 식견이 높았던 방은 조광보, 희곡 조광좌, 음애 이자 선생 등 네 분이 도의로 친의를 맺고 은거하며 노년생활을 즐기기 위해 기흥구 지곡동 두암산에 건립한 이 정자는 무엇일까요?

정답: 사은정 (네가지 은혜로운 일-나물캐고 나무하고 밭 갈고 낚시하고)

 

  1.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숙박문제 해결과 문화국가 이미지 구축을 통한 관광활성화를 위해 전통사찰에 머물면서 전통문화와 수행생활을 체험하는 상품으로 용인에서는 법륜사에서 이것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관광객에게 우리나라 전통문화체험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템플스테이

 

  1.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디어 퍼포먼스 예술가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다. 조각가, 행위예술가인 이 분은 196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예술가들 중 가장 도발적인고 혁신적인 인물로 2008년 10월 용인시 기흥구에 그의 미술관이 공식 개관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백남준아트센터

 

  1.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 지리 우지진다... 로 시작하는 이 시조를 지은사람은 약천 남구만 선생님이다. 이 시조가 청구영언에 전해지고 있으며 이 외에도 900여 편의 시와 26편의 기문, 90여 편의 묘지명 등을 남긴 빼어난 문장가이다. 이에 용인 문학회에서는 약천 남구만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문학상을 제정 했는데 이 문학상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힌트-남구만 선생님의 호를 딴 문학제가 있다.

정답 ; 약천 문학상

 

  1. 이분은 1875년 기흥구 농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24세에 대한제국 무관학교 1기생으로 입학하여 육군장교가 되었지만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1919년 용인에서 3`1만세를 주도했다고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자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 장군과 의용군을 조직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뛰어 들어 청산리 대첩을 이끌고, 성동사관학교 교장을 맡아 부교장인 김좌진 장군과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9년간의 옥고를 치르다 1939년 64세의 나이로 순국한 이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김혁 장군

 

  1. 이분은 항일의병이라 부릅니다. 처인구 양지면 출신으로 1907년 희미해가는 정국을 개탄하고 포군 32명을 모집하여 의병대를 만들어 일본 기병대와 접전을 벌여 격퇴하고, 그 후 이천, 광주, 용인, 죽산 등지를 전전하면서 크게 위세를 떨쳤던 바, 봉기한 이후 이천읍 우편소와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였고, 용인의 굴암사[지금의 묵리 용덕사]에서 일본 토벌대와 교전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혁혁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 1907년 11월 10일 수원수비대에 체포되어 당년 36세 나이로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옥여 임경재

 

  1. 이 곳은 회화 조각 도예 설치 등 현대 미술 전반에 걸친 작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입니다. 2,281m부지에 실내 전시실과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장품은 약 140여점으로 대부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은 1983년부터 지속적으로 미술문화의 저변확대와 향상을 목적으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교양강의와 실기로 이루어져 오고 있는데, 오랜 역사와 활발한 활동을 자랑합니다.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한국미술관

 

  1. 이곳은 한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생명력을 모색하기 위해 세운 전문현대미술관입니다. 시설과 소장품면에서 경기도내 개인 미술관으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소장품은 한국화, 서양화, 판화 등을 합해 모두 20,400여 점으로 이중 민족혼의 화가로 불리는 내고 박생광의 그림과 스케치만 하더라도 100여점에 달해 최대 소장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와 연구활동을 위하여 41,200종에 이르는 국내외 전시도록 및 미술사 자료를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기흥구 영덕동에 위치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이영미술관

 

  1. 숙종이 사망하고 희빈 장씨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데 이 사람은 조선 20대 왕 경종이다. 경종이 왕에 오른 지 4년 만에 세제였던 영조가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고 복통을 일으켜 사망을 하자, 경종이 독살되었다고 생각하고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며 반대파들이 무신년에 일으킨 ‘이인좌의 난’ 또는 ‘무신란’이라 불리는 이 난이 일어나자 영조는 이 사람에게 난을 진압하게 했다.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해주오씨 묘역에 묘소가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오명항)

 

 

  1. 미래 주역인 어린이에게 문화마인드를 높여주고 다양한 체험전시를 통해 어린이의 창조적감성과 이성개발을 위해 경기도에서 용인시 기흥구에 2006년부터 건립을 시작하여 2011년 9월 26일 개관하였으며, 세계 100대박물관을 목표로 운영 중인 어린이를 위한 국내 최대 박물관은 어디일까요?

정답: 경기도어린이박물관

 

  1. 1905년 11월 유근은 황성신문에 장지연과 함께 일제의 침략과 을사오적을 통렬히 질타한 논설입니다. ‘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뜻으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1월 17일 대신들을 압박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조약 체결에 찬성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대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논설은 무엇일까요?

정답: 시일야방성대곡

 

 

  1. 이 분은 우리나라의 1세대 서양화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와 그 뒤 어린이 그림 같기도 하면서 표현의 세련성과 조형적 구성이 치밀한 그리을 그렸고, 독특한 화풍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분이 마북동에 사시던 집이 등록문화재 제404호로 지정되었는데, 이 분이 198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면서 작품활동을 한 곳입니다. 이 화가는 누구일까요?

정답 ; 장욱진 화백

 

  1. 고고·역사 분야와 민속·복식분야 중심으로 소장품을 다수 확보하여 연구,전시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박물관으로는 유일할 정도로 출토복식유물에 대한 보존처리시설을 갖추어 복식유물의 연구, 전시, 보존과 복원 등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유물은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의사의 유묵을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 제1호 덕온공주 당의를 포함한 1백여점의 중요민속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단국대석주선기념관

 

  1. 동백지구 택지개발사업의 발굴조사 결과 역사적 보존가치가 인정된 구석기 문화층을 이전 복원 전시하여 설립한 용인의 첫 시립유적 전시관입니다. 전시자료는 동백지구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물을 비롯해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용인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도자기 생산활동의 증거물과 역사인물의 활동자료를 포함한다.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어린이, 가족, 학교연계, 특별교육 등)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정답: 용인문화유적전시관

 

  1. 이것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해마다 지내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사직제례와 더불어 국가의 큰 제사인 대사에 속하는데, 이것의 전수자인 이형열 선생님이 처인구 포곡 유운리에 살고 계십니다. 이것의 절차는 취의, 영신, 행신나례, 진찬,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음복례, 철변두, 망료, 제후처리 의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1호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 종묘제례

 

  1. 용인은 예로부터 서울에서 영남지방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은 한양에서 동래로 이어지는 주요 교통로인 역로가 수지에서 백암까지 용인을 관통하여 지나갔다. 결국 이것은 서울에서 영남까지 사람과 물산의 왕래뿐만 아니라 외침의 이동로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 길은 무엇인가요?

정답: 영남로

 

  1.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대한 저항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용인 출신으로 만주의 독립운동 조직인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한 김혁 장군과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독립군 투쟁의 지표를 제시한 용인의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요?

정답: 여준 선생

 

  1. 삼학사는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말 합니다 .청나라는 이 세 사람을 청나라에 반대하는데 앞장섰다는 이유로 청나라로 끌고 가 주였는데요. 숙종 때 송시열이 이 삼학사를 기리는 뜻에서 편찬한 전기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삼학사전

 

  1. 1982년에 개관하였습니다. 고미술 수집품1.200여점을 토대로 수집, 조사연구, 보존, 전시에 힘써 현재 토기, 도자기, 금속공예, 불교 미술, 서화, 고문서, 전적, 조각 등 15.000여점의 국내외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전 삼성회장의 호를 따서 이름지은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호암미술관

 

  1. 고고·역사 분야와 민속·복식분야 중심으로 소장품을 다수 확보하여 연구,전시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박물관으로는 유일할 정도로 출토복식유물에 대한 보존처리시설을 갖추어 복식유물의 연구, 전시, 보존과 복원 등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유물은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의사의 유묵을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 제1호 덕온공주 당의를 포함한 1백여점의 중요민속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 단국대석주선기념관

 

  1. 서양에서 제작한 고지도와 지도첩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주변국가의 역사지리 및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사료를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소장품들은 고구려사 왜곡문제, 간도 문제, 동해표기와 독도문제 등 역사분쟁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고지도 사료를 바탕으로 지도의 연구와 전시를 바탕으로 지도의 연구와 전시를 목적으로 설립한 고지도 전문박물관입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 경희대혜정박물관

 

  1. 조선 1636년 인조 때 청나라가 쳐들어온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와 신하들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45일을 버텼지만 결국은 청나라에게 굴복을 하게 됩니다. 항복의 결과로 조선은 청나라와 굴욕적인 군신관계를 맺게 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대신들은 인질로 끌려가게 되는데요. 이때 추담 오달제도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로 끌려가서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8년 후 끌려갔던 사람들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고, 소현세자의 사망으로 인조에 이어 효종이 왕에 오르는데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봉림대군

 

  1. 용인의 백자 가마터에는 도자기를 구우면서 사용되었던 많은 부속 유물이 있습니다. 그 중 도자기의 품질을 좋게 하기 위해 불로부터 도자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 갑발

 

  1. 향교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제향공간인 이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공자님과 중국 송나라의 사현, 우리나라의 동방 십 현의 위패를 모시고 일 년에 두 번씩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대성전

 

  1. 향교에는 제사지내는 곳, 그리고 학생들이 숙식하는 곳, 제사 지낼 때 사용되는 제기를 보관하는 곳 등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물 이름은 무엇인가요? 정답 ; 명륜당

 

  1. 향교나 서원의 대문은 세 개로 만들어진 삼문이 있는데, 바깥쪽은 외삼문, 안쪽은 내삼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들어오고 나갈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동쪽 문으로 들어가 서쪽 문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무엇일까요?

정답 ; 동입서출

 

  1. 향교나 서원에는 책을 보관하거나, 책을 찍어 낼 수 있는 목판을 보관 하는 곳이 있습니다. 책이 귀했던 시기에 책을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규약을 가진 서원이나 향교도 있을 정도로 엄하게 단속을 하였는데, 심곡서원에도 이러한 시설이 있습니다. 지금의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곳은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정답 : 장서각

 

  1. 다음의 도시는 어디일까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이곳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으로 포은 선생의 묘가 있고 포은 문화제를 열고 있는 우리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나라 3대 천문관측소 중 하나인 보현산 천문대가 위치하며, 매년 한약축제와 별빛 축제를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정답 : 영천

 

  1. 옛말에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용인에서도 명당자리가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의 산봉우리는 임금왕(王)자 모양으로 생겨 여기에 묏자리를 쓰면 옛날부터 임금이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곳에 부친의 묘를 써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임꺽정의 할머니가 관미봉이라 하는 곳에 묘를 써서 임꺽정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정답 : 묘봉리

  1. 이분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외숙인 이원진과 고모부 김세렴에게서 학문을 배 웠 습니다. 어릴 적부터 사물을 탐구하는데 남달랐다고 하며, 다산 정약용에 따르면, 여덟 살에 이미 서경과 역경을 읽는 천재라고 합니다. 소과에 응시하여 진사 시험에 합격을 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전북 부안현우반동으로 내려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며 국가와 백성이 부강하고 편안하려면 토지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는데 이분은 백암면 석천리에 묘소가 있는 반계 유형원 선생님 입니다. 유형원 선생님이 “토지는 골고루 정당하게 분배 되어야한다” 고 주장 하셨던 토지개혁론은 무엇일까요?

정답 : 균전제

 

  1. 용인시민들을 위한 각종 문화시설과 공연장이 있습니다. 용인문예회관, 문화예술원, 죽전야외음악당, 수지여성회관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수지구 죽전에 2012년 10월에 개관한 1,200석의 대공연장이 있는데 이것은 정몽주선생의 호를 딴 공연장으로 용인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 문화시설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포은 아트홀

 

  1. 양지향교는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하여 지방에 세운 조선시대 중등과정의 공립학교인 향교로 용인에 있는 두 곳 중 한 곳입니다. 1910년대 현 양지초등학교의 전신인 이것이 양지향교에 설립되었고 1950년대에는 용동중학교의 전신인 ‘신생학원’이 이곳에서 운영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양지 지역의 교육기능을 담당하였던 곳입니다. 양지 초등학교의 전신이었던 학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추향의숙

 

  1. 포은 정몽주선생님의 묘소가 이곳 모현에 있습니다. 이 모현은 예전에는 삼으로 직조한 베와 목화에서 뽑아낸 실로 직조한 무명천을 잿물에 삶아내고 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널어 빛이 바래도록 포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 후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해를 능원리에 안장한 후부터는‘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으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모현을 예전에는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정답 : 쇄포면

 

  1. 이것은 능묘 상단 좌우에 설치된 장대형의 표석으로 멀리서 바라보아도 쉽게 알 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석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모양이 촛대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촛대석이라고도 불리는 이 석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망주석

 

  1. 과거 전국팔도의 재인청 중 가장 으뜸인 곳이 화성재인청이었습니다. 재인청은 18~19세기에 만들어져 1920년까지 남아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궁궐의 큰 행사나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재인을 선발하여 잔치를 배설하기도 했습니다. 각 재인청의 수장을 대방이라 칭하였고 화성재인청을 수장을 도대방이라 하였는데 마지막 도대방은 춤꾼이셨던 이 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용인지역에서 추로 활동하여 김량장 할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 분의 제자가 경기 재인청의 고 이동안 선생님이고 이동안 선생님의 제자가 경기고깔소고춤의 보유자인 정인삼 선생님입니다. 정인삼 선생님은 용인출신 예인으로 용인을 본향으로 하는 춤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러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신 마지막 화성재인청으의 도대방은 누구일까요?

정답 ; 김인호 선생님

 

  1. 대동굿은 마을 사람들 모두의 안녕을 빌고 구성원의 단결을 다지는 제례입니다. 일반적인 굿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이 농악과 악기 연주를 통해 하나가 되는 놀이 문화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용인에는 할미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마고할미를 비롯한 여러 산신들을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행사가 있는데, 이 행사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할미성대동굿

 

  1. 조선 영조 임금 때 도승지로 있으면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하라는 명령을 내 리자 죽음을 무릅쓰고 명령을 철회시켰던 사람은 역북동에 묘소가 있는 이 사람입니다. 영조에 이어 정조가 즉위하자 정조를 도와 수원화성의 총 책임을 맡았으며, 18세기 중엽 상업의 유통질서가 문란해지자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상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채제공

 

  1. 충렬서원은 포은선생의 뜻을 기리며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기위한 유생들이 학문을 닦았던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사액을 받았으나 지역 유림들에 의해 운영된 서원이었기에 사학이라고 부릅니다. 이에 맞서 나라에서 세운 관학이 있었는데 군, 현마다 하나씩 세웠습니다. 용인에는 양지와 구성에 두 개의 관학기관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정답 : 향교

 

  1. 약천 남구만 선생님은 왕을 생전에 잘 보필하신 공로가 있어서 종묘에 있는 공 신전에 이 왕의 공신으로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왕은 인현왕후 민씨와 희빈 장씨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1680년에 일어났던 경신환국. 1689년 기사환국과 1694년 갑술년에 일어났던 갑술환국을 일으켰던 이 왕은 누구일까요? 힌트-경종과 영조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정답 : 숙종

 

  1. 조선시대 4색 당파 중의 하나로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로 후에 경종이 되는 세자를 보호하는 당파로써 윤증. 윤선거 .남구만. 박세채. 최석정 등이 대표적인 인 물들입니다. 4색 당파인 노론. 소론. 남인. 북인 중 어느 당파의 영수이셨을까요?

정답 : 소론

 

  1. 이 사람은 조선시대의 무신으로 1419년 세종 명을 받아 김종서 등과 쓰시마 섬을 정벌하였고 그 공적으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1425년 음력 6월 9일 향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는데, 세종은 조회를 3일간 중단하고, 양후(襄厚)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6월 17일 내린 교서에서 세종은 《만리장성이 갑자기 무너졌다!》라는 표현으로 비통함을 표시한 이 분의 무덤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 79번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95년 5월 18일, 그의 이름을 딴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국산 잠수함이 거제도에서 진수되었는데,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이종무

 

  1. 용인에는 국보4점, 보물 44점, 사적 3개, 국가 민속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 중 국보 262호는 용인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커다란 항아리입니다. 높이 49.0cm 아가리 지름20.1cm 밑지름 15.7cm인 이 항아리는 형태를 만들거나 구워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한번에 물레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을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시켜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온화한 백색과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를 고루 갖추어진 항아리로 보름달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보물 항아리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백자 달항아리 또는 백자대호

 

  1. 이 책은 고려의 승려 제관이 법화경의 이론과 실천부분을 나누어 정리한 천대사상을 집약한 것입니다. 천대사상이란 ‘모든 현상은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다’ ‘모든 현상은 막힘없이 서로 받아 들이면서 역동적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에서 우주를 한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불교사상입니다. 이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의 한 종파인 천태종이 성립되기도 하였습니다. 보물 제1052호로 지정된 이 유물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이며 2권의 책 중 상권 1권에 해당됩니다. 충숙왕2년에 기복도감에서 간행되어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천태사교의

 

  1. 시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언제든지 갈 수 있 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옛날 시장은 매일 열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날짜에만 장이 섰는데요. 용인에도 대표적인 전통시장으로 용인장과 백암에 백암장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용인중앙시장은 새롭게 변화하여 ‘엽전 도시락카페’를 운영중입니다. 엽전으로 음식을 사서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이 카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머뭄 카페

 

  1. 전통혼례에서 결혼을 할 때 신랑은 신부 집에 나무로 조각한 이 새를 가지고 가 서 상위에 놓고 절을 합니다. 이것을 ‘전안례’라고 하는데 이 새는 부부사랑이 유별난 동물이라 그것을 본받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포은 문화제의 전통혼례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새는 무엇일까요?

정답 : 기러기

 

  1. 조선 후기에는 논에다 볍씨를 직접 뿌리지 않고 모판에다 모를 길러서 모내기를 하는 방법을 사용해 노동력이나 벼의 수확량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을 가두어 두는 시설이 필요했는데요. 이동면과 기흥에 아주 큰 규모의 이것이 있습니다. 이 시설은 무엇일까요?

정답 : 저수지

 

  1. 흥선 대원군은 조선시대 고종임금의 아버지로 13살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른 고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조선 후기 서원의 첩설된 서원이 너무 많아지자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자 서원철폐령을 내려 몇 개만 남기고 없애 버렸습니다.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은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서원은 몇 곳 될까요?

정답 : 47개

 

  1. 궁궐 또는 향교나 서원 왕릉 등 경건하고 엄숙해야하는 공간에 들어가는 입구에 세우는 문으로 붉은색이 칠해져 있고 위에는 창이나 화살모양이 조각되어져 있기도 하는 이문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정답 : 홍살문

 

  1.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김혁공원’은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만주에서 치열하게 항일 독립운동을 하셨던 김혁 장군을 기리기 위해 건립 된 공원입니다. 김혁 장군은 기흥구 농서동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무관학교 육군참위로 근무하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3.1만세운동에 참여를하고 만주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민부 집행위원장과 성동사관학교 교장을 지내던 김혁 장군의 호는 무엇일까요? 정답 : 오석 김혁

 

  1. 고려 말 '삼은(三隱)'은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학자로, 고려 왕조에서 벼슬하였으나

이성계의 조선 건립 당시 ‘두 왕조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 (불사이군)’을 주장하며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지 않는 세 사람을 말합니다. ‘삼은’으로 불리던 세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또는 도은 이숭인

 

  1.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본관은 연안. 자는 백옥(伯玉), 호는 저헌(樗軒)으로 1453년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정권을 장악하자, 정인지·노효담·신숙주 등과 더불어 훈구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1456년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사육신의 절의를 칭송하는 시를 익산 동헌에 남겨 죄를 물어 벌을 주어야 한다는 조정의 대신들의 논의가 있었으나 예조참의에 올랐습니다. 이 사람의 묘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 바로 옆에 있으며 포은 정몽주 선생의 증손자 사위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저헌 이석형

 

  1.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 때 정몽주와 개혁의 뜻을 함께 한 절친이었으나 조선개국의 갈림길에서 서로 적이 된 사람입니다. 조선개국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삼봉 정도전

  1. 기흥구 지곡동에 위치한 사은정은 조선 중종 임금대의 명현인 동방4현 중 정암 조광조 선생과 방은 조광보, 화곡 조광좌, 음애 이자 등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네 가지를 낙으로 삼아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은 정자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농사짓고, 나무하고, 낚시질하고’ 나머지 또 하나의 낙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답 : 나물 캐기

 

  1.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이 사람과 아버지 허엽, 두 형인 허성과 허봉, 누나 허난설헌은 당대의 훌륭한 문장가로 널리 이름을 떨쳤습니다.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인물로 평가되며 우리나라의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저자입니다.

정답 : (허균)

 

  1. 이 사람은 조선의 천재 여류시인으로 잘 알려진 여성입니다. 남성주의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여성은 이름을 가질 수 없던 시기였으나 이 사람은 사대부가의 여인으로 어엿한 이름과 호를 가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신동이라 칭송받았으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으로 시집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였으며 27살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죽기 전 자신이 쓴 시를 모두 태웠으나 누이의 작품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동생 허균은 자신이 암송하던 시와 친정집에 남겨있는 시를 모아 작품집 <난설헌집>을 펴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허 난설헌 또는 허초희)

 

  1. 숙종 임금 대에 영의정의 벼슬까지 올랐던 사람으로 희빈 장씨 처벌에 중형을 주어야한다는 주장에 맞서 왕위를 이을 세자의 생모이므로 가벼운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숙종이 희빈 장씨의 사사를 명하자 사직하고 처인구 모현면 갈담마을에 내려와 여생을 보냈으며 종묘 숙종 임금의 묘정에 배향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약천 남구만)

 

  1. ‘생거진천 사후용인’의 유래에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의 고향은 진천이지만 묘는 현재 용인 기흥구 공세동에 있습니다. 이 사람의 아들은 생전에는 진천에서 부친을 모셨고 사후에도 부친의 묘소 아래에서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하다가 자신이 죽으면 그 자리에 묘소를 마련하라고 유언함으로서 죽어서도 부친을 가까이서 모시겠다는 이 아들의 지극한 효성에서 이러한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이성계를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었으며 한양성 축성 책임을 맡았으며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풍남문을 건립한 사람입니다. 누구일까요?

정답 : (죽정 최유경)

 

  1.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이 서원은 1576년 선조 임금 때에 포은 정몽주와 정암 조 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죽전동에 세워져 죽전서원이라 하였으나 임진 왜란 때 건물이 불타 정몽주 선생의 묘 아래 다시 중건하였다. 이 후 조광조 선생의 위폐 가 심곡서원으로 옯겨 배향되었으며 1706년 현재의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 서원의 이름은 무엇일까?

정답 : (충렬서원)

 

  1. 정암 조광조 선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금의 이곳에 묘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며 한동안 선영의 묘를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만든 연못과 느티나무가 500년이 지 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조선시대 사립중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던 이 서원은 수지구 상현동에 있어요. 이 서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심곡서원)

 

  1. 이 사람은 조선의 천재시인으로 ‘해동강서파’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연산군 대에 간신 유자광과 유자광에게 아첨하는 신하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직언을 싫어하는 연산군에게 ‘있지도 않은 사실을 고한다’ 라는 죄목으로 파직, 이후 갑자사화에 연류돼 사사당했습니다. 이후 절친인 이행이 그의 시를 모아 <읍취헌유고>를 편찬하였으며 이 사람의 묘는 처인구 원삼면 식금리에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정답 : (읍취헌 박은)

 

  1. 임진왜란 때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경기도 일대의 왜군을 격퇴하고 서울을 수복할 계획을 세웠으나 연천군에서 왜군의 야밤 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심대 장군에게 심한 타격을 받은 왜군은 장군의 관을 쪼개고 그의 머리를 베어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과 같았다고 전한다. 이 사람의 묘는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에 있다. 누구일까요?

정답 : (심대 장군)

 

  1.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고려 말의 정국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정계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개혁의 의지는 고려왕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자는 온건개혁파와 새 왕조를 세워 모든 것을 완전히 변화시키자 급진개혁파로 나뉘었습니다. 온건개혁파의 대표적 인물로 이색, 정몽주가 있었다면 급진개혁파의 대표로 정도전과 조선왕조를 세우고 첫 번째 왕이 된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이성계)

 

  1. 고려 우왕 때 명나라는 고려가 원나라로부터 되찾은 철령 이북 땅을 다시 반납하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리하여 우왕은 이성계 장군에게 요동지역 정벌의 명령을 내립니다. 이 때 이성계는 4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는데요, 이 4가지 이유는 무엇일까요?

4가지 모두를 쓰세요.

정답 1. 여름철 농번기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다.

  1.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를 쓰기 힘들다.
  2. 요동을 공격하는 시기를 틈타 왜적이 침입할 우려가 있다.
  3.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잃은 옳지 않다.

 

  1. 용인의 경치 좋은 곳 8곳을 선정해 용인8경으로 꼽습니다. 조선 숙종 때의 영의정이었던 남구만이 낙향하여 정자를 짓고 비파를 타며 경치를 즐겼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용인 8경 중 어디일까요?

정답 : (비파담 만풍)

 

  1.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숙종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여인으로 어린 나이에 상궁 나인으로 입궐해 희빈의 지리까지 오르고 아들을 낳은 후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사건이 발각돼 숙종의 눈 밖에 나서 결국은 사사까지 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낳은 아들은 조선의 제 20대 왕인 경종으로 남구만 선생은 이 여인을 가벼운 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직하고 용인 파담마을에 낙향해 살았습니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정답 : (장희빈 또는 희빈 장씨)

 

  1. 이분은 의병장입니다. 용인 양지면 평창리 사람으로 본관은 풍천입니다.

192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요한데 이어 헤이그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자, 당시 농공상부 주사직을 맡고 있던 관직을 버리고 항일투쟁을 벌입니다.

의병부대를 만들어 인근 부대와 연합 작전을 펼쳤는데, 양지 죽산 광주 여주 이천 일대에서 합류해 유격활동을 펼쳤으나, 1907년 11월10일 일진회원이 잠시 집에 머물러 있던 그를 추계리 송병준 별저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게 밀고하여 체포되어 일본군에 의해 총살당하신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 옥여 임경재

 

  1. 지역이름입니다. 이 지역은 1919년 3월 21일 용인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역사적인 곳으로, 용인시는 지역 정체성 찾기 일환으로 지명 개선 대상 고개 현황을 파악하다가 이를 발견해 개선에 나섰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장 박포(朴苞)가 이 마을에서 귀양살이했다고 해서 그 직함을 넣은 고개로 불렸다가 일제강점기 일본식 한자 표기인 좌전(佐田)으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 : 좌찬고개

 

  1. 이분은 용인 출신 독립군 장군입니다. 1895년 기흥구 농서동에서 태어나서 189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 군대가 해산될 때까지 군대에 있었습니다. 1925년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고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에 취임하였고(교감은 김좌진) 매년 2기씩 약 5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하였습니다. 1928년 신민부총회에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출감한 뒤 1939년 옥고에 따른 병환으로 사망하였습니다. 1965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묘지는 현충원에 있습니다. 이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 김혁장군

 

  1. 일제강점기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로 1906년 용인향교(龍仁鄕校)에서 학부대신을 역임한 이도재(李道宰)와 함께 명륜학교를 설립하여 신구 학문 교육에 힘썼다 심곡서원 부지가 남에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을 용인 지역 유지들과 함께 부지를 되찾아 오늘에 이르게 하였으며, 그 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마친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 맹보순

 

  1.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으로 이 지역에 신교육 기관이 필요함에 따라 이 고장 유지 여준(呂準)[1862~1932], 오태선, 오용근 등이 추진하여 1908년에 설립되었다. 원삼면 죽능리에 거주하는 오항선이 자신의 사랑채을 내어 놓아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후 초가로 건물을 짓고 교육하였다. 학생 수는 알 수 없고, 교사는 여준, 오태선, 김도태, 김공집 등이었습니다. 이학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정답 : 삼악학교

 

  1. 1874(고종 11)∼1905. 조선 말기의 관료·우국지사로 1892년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1년 영국·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참사관에 임명되어 영국 런던으로 부임하였다.1904년 8월 제1차한일협약이 강제로 성립되어 일제가 한국의 주권을 잠식하자, 각국에 주재하는 우리 공사들에게 전신으로 연락, 한국 외교를 위하여 재외사절단이 공동 항쟁을 하도록 토의하였다. 또한 영일동맹의 부당함을 들어 영국 정부에 항의하였으나, 영국 정부가 주영 한국공사관을 폐쇄하는 등 영일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이 한국 정부의 주권을 강탈할 음모를 획책하자 이를 개탄하여 1905년 5월 12일 음독한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 이한응

 

  1. 이 사람은 독립운동가, 국가유공자, 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로 황성신문 창간, 만민공동회 간부, 대종교계 대표, 동아일보 고문을 지내셨습니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한 직후, 장지연이 1905년 11월 18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이란 을사조약을 폭로, 규탄하는 유명한 논설을 쓸 때, 너무 격분하여 끝을 맺지 못하자 유근이 그 후반부를 끝내고 밤새도록 인쇄하여 배달하였던 이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 석농 유근

 

  1. 동백동 산16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 나라 군대의 참전과 승리를 기리기 위해 1974년 9월 6일 국방부 참전비건립추진위원회에 의해 건립되었다. 탑신의 높이 180cm 정도이며 탑 받침대의 높이는 220cm이다. 주변에 이 나라 군인의 형상을 한 동상이 있으며, 탑 아래에 한국어와 이 나라의 참전을 기리는 구문이 새겨진 와비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정답 : 터키

 

  1. 지명에 관련 된 문제입니다.

이 고개는 동부동 해곡동에서 원삼면 사암리로 넘는 고개로 현재는 2차선 포장도로로 바뀌었지만 험한 지형 때문에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고개 밑에 범암굴, 호리 등의 지명이 생길 정도였다. 또한 임꺽정이 죽산 칠장사에 있는 스승을 만나러 가다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용인 팔경 중 삼경과 관련있는 지명은 무엇일까요?

정답 : 곱든고개

 

  1. 이 하천의 발원지는 용인시 처인구 호동의 문수봉 남서쪽 계곡이다. 이곳은 처인구의 이동면과 호동, 원삼면과 안성시 양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일명 발원샘이라고도 하는데, 근동에서는 이 골짜기를 ‘아낙골’이라고도 부른다. 용인시의 중심가인 중앙동을 지나 북류하다 모현면을 거쳐 광주시를 지나 곤지암천과 합류하여 한강 수계인 팔당호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하천은 무엇일까요?.

정답 : 경안천

 

  1.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부아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면서 송전천·원천천·용덕사천 등의 지류의 물을 모아 천리에서 남쪽으로 꺾어서 이동저수지에 모인다. 이 물은 다시 수문을 빠져나와 서류하여 평택시 진위면·서탄면·고덕면을 거쳐서 안성천에 유입된 뒤 아산방조제에서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하천은 무엇일까요?

정답 : 진위천

 

  1.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로 기후변화가 발생하면서 가뭄, 폭우, 폭설, 기온상승, 질병발생 등 인류의 생활환경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용인시는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를 대상으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과 생활 속 친환경 실천사항에 대한 맞춤형 기후변화 교육 공간은 무엇인가요?

정답 : 기후변화체험교육센터

  1. 국내 최대 규모의 반려견 놀이터가 4월 12일에 문을 열었는데, 반려견 놀이터에는 반려견을 위한 산책과 야외활동 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놀이시설도 함께 설치했습니다. 반려견 놀이터는 지난해 12월 문을 연 구갈레스피아에 이어 용인에서 두 번째입니다. 용인시 하갈동에 있는 이 공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정답 : 용인 기흥 호수공원

 

  1. 처인구 중앙에 위치한 60년간 이어온 전통시장으로 교통 및 시장접근이 유리하고, 지역상권과 연계돼 높은 성장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용인의 전통풍물과 지역문화를 느낄 수 있으며, 떡골목, 순대골목, 잡화골목 등 특화골목이 형성되어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시장이름은 무엇인가요?

정답 : 용인중앙시장

 

  1. 이분은 일제강점기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로 1862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1894년 신갈 금화에 와서 후학을 가르치다 1906년 용인향교에서 학부대신을 역임한 이도재와 함께 명륜학교를 설립하여 신구 학문 교육에 힘썼습니다. 문집으로 『동전문집』이 있습니다. 이 분은 누구일까요?

정답 : 동전 맹보순

 

  1. 용인에는 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교육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용인의 현재 초등학교 수는 몇 개일까요?

정답 : 100

 

  1. 3·1 만세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인산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인데 우리고장 용인에서 처음 만세운동을 했던 날은 언제일까요?

정답 : 321

 

  1. 용인문화원 부설기관으로 전통문화와 역사적 사료에 대한 향토문화를 보존 및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용인에 산재되어 있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여 향토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비하여 용인문화정책에 선도적인 역할을 주도할 수 있는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시민에게 향토애와 올바른 향토사를 인식시키기 위한 자료를 정리하여 향토사발간 및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부설 기관은?

정답 : 용인학연구소

 

  1. 향토문화의 전승, 발굴 창달선양사업, 향토사 발간사업, 지역의 특색을 개발한 향토축제의 토착화등 다양한 문화사업의 수행으로 지역민의 문화적 향수와 욕구를 충족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지역문화의 발판에서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중요한 기관으로 이바지 하고 있으면서 오늘 하는 포은문화제를 주관하고 있는 기관은 무엇일까요?

정답 용인문화원 

(17019)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199(삼가동) 용인문화예술원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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