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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안내
  • 제   목
    제14회 전국한시백일장
  • 작성자
    용인문화원
  • 작성일
    2016.03.28
  • 파  일

본문 내용

第14回 圃隱文化祭 全國 漢詩白日場(要綱)

 

圃隱文化祭가 올해로 第14回를 맞이합니다. 그간 圃隱文化祭에 보여주셨던 江湖諸賢의 聲援에 感謝드리며 아래와 같이 漢詩白日場을 開催합니다.

今年에 施行하는 白日場도 韓國漢詩協會에 管理와 運營을 依賴할 豫定입다. 全國에 계시는 漢詩人 여러분의 많은 參與를 기다리며 精誠을 다하여 白日場을 準備하고자 합니다. 周圍 漢詩 同好人 여러분에게도 널리 알려주시어 今年에도 大盛況을 이룰 수 있도록 聲援해주시기를 仰望하나이다.

 

▶日時 : 2016年 4月 22日(金曜日) 午前 10時

▶場所 : 圃隱文化祭 行事場 (龍仁市 處仁區 慕賢面 능곡로 45 영일정씨 제각)

但, 雨天時 陵院初等學校 講堂

▶課題 : ○詩題 : 懷顧 處仁城 勝捷

○押韻 : 城 ․ 名 ․ 兵 ․ ○ ․ ○ (庚統)(나머지 韻字는 當日 發表함.)

▶考選 : (社)韓國漢詩協會 委任

▶施賞 : ○壯元 1人 賞狀 及 副賞 100萬원(용인시장상)

○次上 2人 賞狀 及 副賞 各 50萬원(용인시의회의장상)

○次下 3人 賞狀 及 副賞 各 30萬원(용인문화원장상)

○參榜 7人 賞狀 及 副賞 各 20萬원(용인문화원장상)

○佳作30人 賞狀 及 副賞 各 10萬원(용인문화원장상)

▶參加資格 : 漢詩 創作 可能者. 先着順 15名.

接受마감 : 2016年 4月 18日(月曜日)

▶參加者 遵守事項

○同人異名이 있을時 住民登錄上의 姓名으로 申請할것.(住民登錄證持參).

儒巾, 道袍 必히 着用. 붓펜, 試紙는 現場에서 배부함.

(儒巾, 道袍 미 착용자 대회 참가 불가)

▶接受處 : 郵 17019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199 용인문화예술원 3층

[용인문화원]

031)324-9633 FAX 031)324-9634

▶其他 : ○ 1회~13회 한시백일장 장원수상자는 금년 14회 백일장부터 찬조시로 접수합니다. 參加者에게 여비 일만원과 식권 제공.

 

2016年 3月 28日

 

圃隱文化祭推進委員會

處 仁 城

 

處仁城은 龍仁의 西南쪽인 南四面 衙谷里에 있는 土城으로 現在 남아 있는 城壁의 크기는 400여 미터정도이다.

人類歷史上 가장 큰 나라를 세웠던 사람은 징기스칸이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이르는 廣大한 地域을 征服하여 世界歷史上 가장 큰 帝國을 建設했고 歷史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징기스칸은 蒙古部族을 統合한 後 北中國을 支配하고 있던 西夏와 金나라 征服을 始作으로 南宋을 滅亡시키고 軍隊를 서쪽으로 돌려 멀리 유럽에까지 領土를 擴大했다.

이 過程에서 背後의 安定을 위해 蒙古使臣 著古與의 被殺을 口實로 高麗에 侵入하였는데 以後 高麗와 蒙古는 40餘 年間에 걸쳐 抗爭을 벌이게 된다.

蒙古는 7次에 걸쳐 高麗의 全國土를 蹂躪하였는데 수많은 人命과 財産이 被害를 입어야 했다. 一部學者들은 7次가 아니라 9次라고 한다니 얼마나 被害가 莫大하고 百姓들의 苦衷이 莫甚했을지 斟酌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때 初造大藏經을 비롯하여 黃龍寺 9層塔과 같은 수많은 文化遺産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當時의 崔氏 武臣正權은 蒙古의 侵入에 맞서 江華島로 首都를 옮겨 江都라 하고 對蒙抗爭의 意志를 불태웠다. 하지만 陸地의 百姓들은 그야말로 全國을 焚蕩질하는 蒙古軍隊의 발굽아래 하루라도 平安한 삶이 있었을 리 萬無하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江華島에서는 王室과 崔氏 武臣正權의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바다건너 陸地에는 地獄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다면 果然 民心을 天心으로 아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40년을 버틴 抗爭의 意志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高麗가 世界的인 大帝國을 세운 몽고와 40餘年에 걸친 長期抗戰을 持續한 背景에는 處仁城에서 이룬 對蒙勝捷의 自信感이 있었다. 즉 龍仁의 民衆이 이룩한 자랑스런 勝利가 40年 抗爭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當時 蒙古는 世界最强이었다. 蒙古軍隊를 對敵할 相對가 없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닌데 蒙古草原에서 調練된 優秀한 蒙古騎馬軍團은 機動力이나 破壞力, 柔軟性, 忍耐와 끈기, 補給 等에서 斷然 으뜸으로 어떤 民族이나 國家도 이를 對敵할 수 없었다고 한다. 蒙古는 이를 通해 아시아는 물론 世界征服을 이루고 世界史上 由來가 없는 廣闊한 大帝國을 建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高度로 訓練된 蒙古의 騎馬軍團 앞에서 處仁城처럼 작은 土城하나쯤은 그야말로 가랑잎 같은 存在였다. 그러나 龍仁의 民衆은 하나로 一致團結하여 자랑스러운 勝利를 이룩했으니 歷史에 빛나는 處仁城 勝捷이다.

1232년 蒙古가 두 번째로 侵入해 왔는데 出陸還都와 國王의 親朝를 强要하였다. 江華遷都를 抗蒙意志로 보았던 것인데 高麗가 應하지 않자 蒙古軍은 南進을 始作하여 廣州를 거쳐 處仁城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城안에는 白峴院의 僧侶였던 金允侯將軍이 避亂하고 있었는데 處仁部曲民과 함께 蒙古軍에 對抗하였다. 熾烈한 戰鬪가 벌어지고 마침내 화살 한 대에 主將인 살리타이가 죽자 戰意를 喪失한 蒙古軍은 退却하고 말았던 것이다.

金允侯는 處仁城 戰鬪를 勝利로 이끈 名將이다. 일찍이 스님이 되어 白峴院에 머무르고 있던 중에 蒙古가 侵略해오자 處仁城에서 戰功을 세웠고 後에 忠州城 戰鬪(1253년)에서도 蒙古軍을 크게 擊破하였다.

勝利後에 朝廷에서 金允侯將軍의 功을 높이 評價하여 上將軍의 벼슬을 내렸으나 將軍은 功을 다른 사람에 돌리면서 말하기를 "싸울 당시에 나는 활과 화살도 없었는데, 어떻게 감히 重賞을 받겠습니까." 하고 辭讓하여 攝郞將에 任命되었다고 歷史에 傳한다.

金允侯將軍의 말은 自身보다 處仁部曲民(천민들의 집단거주지)을 먼저 앞세운 謙讓의 意味가 强하다. 金允侯將軍의 화살이냐 아니냐가 중요하기보다 民衆이 하나가되어 이룩한 勝利를 더 값지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功을 辭讓하는 謙遜한 마음이야말로 處仁部曲民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大勝을 거두는 실마리가 되었던 것이다.

處仁城戰鬪 以後 處仁部曲은 處仁縣으로 昇格 되었고 金允侯將軍도 靑史에 이름을 떨쳤다. 處仁城勝捷은 對蒙抗爭가운데 첫 번 째 勝利이자 가장 큰 勝捷이었다.

處仁城戰鬪의 勝利는 갑작스런 江華遷都와 疲弊해진 民心속에서 脆弱해진 崔氏 武人正權에게 强力한 對蒙抗爭을 繼續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40餘年을 抗拒할 수 있는 精神的 支柱가 되었다. 또한 官軍이 아닌 純粹한 龍仁의 民衆들이 스스로 떨쳐 일어난 自衛的인 抗爭이었다는 點에서 매우 意義가 크다 하겠으며 以後에 異民族의 侵略이 있을 때 마다 일어나는 義兵運動의 先驅가 되었다.

龍仁市에서는 해마다 가을철에 龍仁市民의 날을 前後하여 處仁城文化祭를 開催하고 있다. 龍仁文化院이 主管하는 이 行使는 處仁城에서 이룬 先祖들의 자랑스러운 勝利를 記憶하고 이를 龍仁精神으로 昇華하기위한 바람이 바탕에 깔려있다.

今年 가을에도 제 25回 處仁城文化祭가 豫定되어 있으며 處仁城은 京畿道記念物 第44號로 指定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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